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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스>는 과학적 난제 25가지를 선정한 바 있다. 그 중 하나는 '우리의 기억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저장될까'하는 점이었다.

▲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 에코리브르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는 실체가 불분명한 '기억'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을 담은 책이다. 기억은 잊혀지거나 심지어 왜곡되기도 한다. 비상하고도 절대적인 기억력을 지닌 사람들도 있는데 주로 이런 능력에 대한 대가는 병적인 강박증이나 다른 능력의 상실로 귀결된다.

이러한 기억에 대한 인식체계는 일반적 과정과는 다르며, 아직 명확히 규명된 바는 없지만 여러 흥미로운 연구와 추적이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엿보게 된다. 또한 기억의 반대인 망각은 건망증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라면 정상적인 과정이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인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의도적으로도 잊혀 지지 않는다.

우리는 잊지 못할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비교적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16강전 한국과 이탈리아 전 당시 안정환의 극적인 끝내기 골이 나왔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 결승전인 브라질 대 독일 전 첫 골이 터졌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이를 기억하는 사람의 비율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기억의 심리적 체계를 하나씩 짚어가며 알려 주고 있다.

<외상과 기억 : 뎀야뉴크>편에는 2차 세계대전 전범인 유대인 강제수용소 간부인 뎀야뉴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뎀야뉴크는 증언자들에 의해 강제수용소 간부인 '폭군 이반'으로 지목되고 사형선고를 받지만 후에 진실이 밝혀지자 뎀야뉴크와는 전혀 생김새가 다른 이가 강제수용소의 간부임이 드러난다. 사실을 추적해 보니 뎀야누크의 사진이 신문에 이미 실린 뒤에 증인들에 대한 신원확인 절차가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이는 단지 언론의 잘못만이 아니었다. 잔혹한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한 바 있었던 증인들은 인식능력이 손상되어 기억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수용소 생활 중 바로 이웃에 살았던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례 하나가 극단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기억이 상당부분 허구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펴 논란을 일으킨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은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 책의 저자 다우베 드라이스마는 이런 측면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넘어가고 있다.

기억은 과거에 있다. 따라서 데자뷰 현상, 기억의 왜곡,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현상 등은 모두 과거와의 연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자신을 나타내어 준다. 수치스러운 일은 아무리 사소해도 잊혀지지 않으며, 열 살에서 스무 살 사이의 기억이 인생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아무리 미래를 보고 산다는 사람도 과거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의 순간까지 따라다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기억은 사실의 인식이 아니라 자신이 보는 만큼의 인식임을 알게 된다. 기억이라는 너무나 불투명한 유리 뒤에 숨어 있는 누군가를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김승욱 옮김, 에코리브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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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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