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일명 상사화로 불리는 꽃 무릇, 그 상사화가 화사하게 폈다고 기사가 난 전북 고창 선운사는 이제 다시, 단풍으로 몸 치장에 나선다. 그러고 보면, 선운사는 사시사철 사연 깊은 꽃이 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늦봄에는 선운사 대웅전 뒷편으로 장관을 이루는 동백꽃이며, 한 여름에는 진한 녹음이 꽃을 대신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상사화가 피고 지는가 싶더니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겨울에는? 물론 설화(雪花)일 것이다.
사실 필자는 활짝 피어난 동백꽃 시기를 맞추지 못해 제대로 보지 못했으며, 지난 개천절(3일) 연휴에 찾았을 때도 흐드러지게 폈다 진 상사화의 흔적을 보았을 뿐 상사화도 제때를 맞추지 못해 감상하지 못했다. 다만, 몇몇 송이 남아서 나같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선운사에는 매년 가을마다 다녀오다시피했다. 아내가 첫 아이를 가져 몸이 무거울 때도, 선운사에 가서 점을 찍고 와야 가을이 갔다.
재작년 가을, 아이들과 함께 찾은 선운사 단풍은 가을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선운사 담장 너머로 햇빛을 머금은 단풍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선운사 경내를 거쳐 도솔암까지 가는 길목마다 수려한 단풍이 버드나무처럼 길가에 휘어져 내려 있고, 3,40분 가량의 산책길은 가슴 속 깊이 청량감을 느끼게 했다.
선운사 단풍의 아름다움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데 있다. 단풍의 색깔도 부드러울 뿐더러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선운사 단풍 구경은, 비단 단풍 구경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다. 단풍에만 관심을 갖다 보면, 자칫 입구 왼편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367호 송악을 놓칠 수 있다. 도솔암 가는 길에 서 있는 멋들어진 소나무와 도솔암 옆에 위치한 마애불상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코스다.
그뿐인가? 온 국민의 눈길을 빼앗았던 대장금의 촬영 장소가 있다. 선운사 앞에 조성된 차밭은, 장금이의 가슴을 울린 민정호와 장금이가 사랑을 고백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 오른편에는 영화 <남부군>을 촬영한 장소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또한 맛을 찾아 전국 각지를 찾는 미식가들이 반가워할 장소가 있는데, 선운사 입구 직전에 즐비한 '풍천장어' 집들이 바로 그것이다. '원조' '어디어디 방송 출연' 등을 써 붙인 집들이 많아서 잘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에서 그치면 2%가 부족하게 되는데, 원기를 돋우는 장어구이에 빠질 수 없는 바로 그 술, '복분자'. 고창 복분자술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래도 자가운전자들은 삼가시길...
선운사 인근에는 온천과 해변이 위치해 있어서, 온천도 즐기고, 서해안을 찾아 낙조를 감상하거나 풍부한 해산물을 맛볼 수도 있다. 요즘은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겨서 어디든지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지평선, 수확을 앞두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전북의 드넓은 평야지대를 감상할 수 있다. 어디에서 이런 지평선을 볼 수 있을까? 고속도로 양편으로 펼쳐지는 따뜻한 노란색 물결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덧, 선운사 IC가 나타나게 되고,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쉽게 선운사에 도착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기왕 선운사 단풍을 보기 위해 전북 고창에 내려갔다면 보고 올 게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의 고인돌 유적지가 그것이다. 그곳에는 고인돌 수백여개가 운집해 있다.
선운사는 고즈넉하게 물들어가는 단풍뿐만 아니라, 주변에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많이 있다. 더군다나 선운사 단풍잎은 아직 절반 정도만 고운 빨강색으로 갈아 입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0월 여행 이벤트 기사 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