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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묘미는 출발 무렵의 설렘이다. 사진은 설악산 입구의 풍경.
ⓒ 김은주
이윤기씨가 어느 책에서 자신에게서 '세계의 중심'은 고향 선산에 있는 어머니의 무덤이라고 한 걸 읽었다. 그는 아직도 가끔 새벽에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혼자 소주를 마신다고 했다.

그리고 이윤기씨의 딸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고등학생이 돼 고국으로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돈 일이라고, 딸에게서 세계의 중심은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인 것이다.

언제나 그리워하는 곳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했을 때 나의 '세계의 중심'은 어디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20대에는 주말이면 간단한 짐을 꾸려 새벽에 기차역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곳에 내가 찾는 행복이 있기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 섞여 표를 끊어 통일호에 오르면 옆자리에 누가 앉게 될까, 은근히 신경을 쓰다보면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는데 그 출발할 때의 느낌은 '설렘'이었다. 이 순간을 내가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낯선 미래에 대한 동경과 내가 속한 현실에서 벗어나면서 얻게 되는 현실로부터의 자유로움.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 두 가지에 응축돼 있다.

▲ 노랗게 익은 벼의 모습이 넉넉함과 행복감을 안겨 준다. 가을 여행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
ⓒ 김은주
내 인생의 축약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의 여행 패턴은 일정한 룰을 갖고 있었다. 여행지는 항상 일정했다. 다니는 곳만 다녔다. 새로운 곳은 가고 싶지가 않았다. 모험심은 부족하고 안정감을 좋아하기에 아는 길로만 다녔다. 어느 역에서 내리고, 시외버스를 갈아타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고, 점심은 어느 식당서 먹고, 이미 오래 전에 짜여진 스케줄 안에서 움직이길 좋아했다. 정해진 노선에서도 자유는 느낄 수 있기에 문제가 없었다.

내 인생에는 언제나 상반된 개념이 충돌했다. 자유롭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안정적이고 싶어 하는 마음. 이 두 가지를 교묘하게 충족 시켜 주는 것이 짧은 여행이었다. 여행은 삶의 활력소가 돼 주었고, 내 현실을 정리하고 새롭게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사는 게 너무 지겹다거나 재미없다거나 하면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아픈 사람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먹는 것처럼 나는 삶의 의지력이 떨어지면 여행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했다. 확실히 여행은 효과가 있었다. 갔다 오면 힘이 불끈불끈 솟아 일 할 의욕이 생기고, 사람 관계에서도 다소 너그러워졌다.

▲ 역시 설악산 입구. 길게 뻗은 나무들이 싱그럽다.
ⓒ 김은주
나는 여행을 혼자 다니는 편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가까운 근교로 가서 참치찌개도 끓여 먹고, 어느 절 싸리문 앞에서 찍은 사진도 아직 갖고 있지만 혼자 가는 여행을 더 자주 했고, 기억도 더욱 생생하고, 만족감도 컸다. 식당에 혼자 들어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꾸역꾸역 밥을 먹을 수 있는 배짱이 있기에 혼자 여행도 가능한 것이다.

친구 중에도 나처럼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굉장히 모험적이었다. 내가 근거리의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왕복하는 데 반해 이 사람은 3박4일 여정의 제주도 한라산을 다녀온다거나 주로 먼 거리 여행을 즐겼다. 혼자 여관에 들어가 잠도 자야 하고 그런데도 씩씩하게 잘 다녔다.

20대와 30대, 내 인생에서 차이점은 기혼자와 미혼자라는 것도 있지만 혼자 여행을 다녔다는 것과 4인 1조가 돼 언제나 뭉쳐서 다녔다는 차이점이 있다. 30대를 살고 있는 현재 뭔가 허전한 것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었는데, 혼자 떠나는 여행이 바로 그것이었다.

올 가을에는 가까운 근교로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아이들에 대해서도 남편에 대해서도, 그리고 내 삶에 대해서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되면 훨씬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엄마나 아내가 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숲을 너무 가까이서 보면 잘 못 보는데, 좀 떨어져서 보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여행을 통해 현실에서 거리를 유지하면 삶을 더욱 능동적으로 살게 되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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