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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영씨 작업장 풍경
ⓒ 인권위 김윤섭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경찰서 정문. 여느 경찰서 앞의 낯익은 풍경처럼 이곳에도 행정사(관공서에 제출하는 서류 작성 등의 업무를 하는 사람) 사무실 간판이 줄지어 매달려 있다. 잠시 굴다리를 울리며 빠르게 내닫는 전철을 바라보다 경찰서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 보면 왼편으로 특이한 상호가 보인다.

언뜻 창고처럼 보이는 외벽에 빨간 페인트로 직접 쓴 글씨인데 그것도 서너 개씩 빼곡히 붙어 있다. 흔치 않은 색깔과 도드라진 필체에서 어딘가 모르게 범상치 않은 사연이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중앙 행정학사 대서소', '중앙 부동산 사무소', '중앙사 도장', '사진'…. 장비와 가재도구를 빼면 세 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에서 그 모든 일들이 수십 년째 이루어지고 있었다.

김호영(남·58)씨는 1966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어려서부터 법률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1학년 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그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고, 1971년엔 등록금 마련을 위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며 기구한 운명의 터널로 빠져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1975년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경찰공무원에 응시했으나 체력검사에서 탈락했다. 이미 그의 몸속에 베트남 전쟁의 상흔이 깊숙이 번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지금까지도 그를 괴롭히고 있는 고엽제 후유증이었다.

김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김씨의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뒤 행정서사(행정사의 이전 명칭)로 일하고 있었는데, 김씨는 아버지를 도우며 뒤늦게 고시공부에 열중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그마저 그만두고 생업에 매달려야 했다.

▲ 김호영씨
ⓒ 인권위 김윤섭
'행정사'. 그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가족을 돌볼 작정이었다. 자신이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아버지 밑에서 수년간 실무를 익힌 만큼 자격시험을 치르면 너끈히 합격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에게는 '행정서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1961년 행정서사법이 제정되고 1995년 행정사법으로 법명이 바뀌었지만,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그동안 단 한 번도 행정사 자격시험을 치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행정사는 법으로만 존재하고 신규 취득자가 전혀 없는 직업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행정자치부는 일반직 공무원 또는 7급 이상 별정직 공무원으로 10년 이상 근무하거나 6급 이상으로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는 시험을 면제하고 행정사 자격증을 발급해 왔다. 이렇게 탄생한 행정사가 2004년 말까지 모두 6344명. 시험도 치르지 않은 '무시험 행정사'가 6000명을 넘어서는 동안 김씨는 30년 넘게 시험조차 보지 못하고 '무자격자'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다.

김씨는 법에 명시된 시험을 실시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교육인적자원부, 국회, 행정자치부, 법제처, 대통령비서실,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을 찾았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귀하는 공무원 경력이 없으므로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

▲ 김호영씨
ⓒ 인권위 김윤섭
행정사라는 직함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김씨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남의 글을 대필하거나 붓글씨 등을 써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여러 간판을 써 붙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내 이름 걸고 간판을 달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중앙대 행정학과 나와서 글 쓰는 것을 돕는다'는 걸 알리려고 '중앙 행정학사 대서소' 라고 쓰고, 도장 파고, 사진 찍고, 부동산 중개인으로 등록하고 그랬던 거죠. 어떤 행정사는 내가 '행정학사'라고 쓴 것도 못마땅했는지 사무실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고발한다며 난리를 치고 그랬어요."

김씨는 2004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우연히 TV뉴스를 보다가 "저곳에서는 내 사정을 한번 들어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김씨의 바람대로 국가인권위는 2005년 7월 "특정 공무원들이 행정사 자격증을 독점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결정을 내리고, 행정자치부장관에게 행정사법에 명시된 대로 적절한 자격시험을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무려 30여 년에 걸친 김씨의 노력이 작은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싸워 온 것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건 말이 안 되는 관행이었고, 좀 혹독하게 말하자면 국가가 저지른 사기이고 범죄입니다. 다소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라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 김호영씨
ⓒ 인권위 김윤섭
과거와 달리 요즘은 행정사 업무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관공서 서류가 대부분 전산화됐고 교육수준이 향상되면서 공문서를 직접 작성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다. 그런 까닭에 김씨는 행정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해도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느새 행정사 자격증이 중요한 삶의 목표가 돼 버렸다. 그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렵게 살아온 자신에게 늘 힘이 돼 주었던 아들에게 보여 줘야 할 선물일지도 모른다.

"내가 앞으로 살아야 얼마나 살겠습니까? 난 평생 글 쓰는 것밖에 배우지 못했어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관공서 문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사람들 얘기 들으면서 내 이름으로 글을 써서 작은 관행이라도 바꾸고 싶습니다. 아직도 잘 쓴 글 하나로 고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게 내 마지막 꿈입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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