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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4일 계주 대기 중인 아들
2005년 10월 4일 계주 대기 중인 아들 ⓒ 홍미식
10월 4일, 드디어 아들 학교의 운동회가 열렸다. 지난 주 비 때문에 한 번 연기되었던 터라 전날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신경이 예민해졌지만 다행히 하늘 높고 말이 살찔 만큼 날씨는 맑고 깨끗했다.

서둘러 김밥과 과일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교문 앞에 이르자 함성소리가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운동장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한가운데에 순서에 따라 단체무용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과 그를 보기위해 가장자리에 둘러선 학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그 사이를 비집고 운동회에 단골손님인 솜사탕 아저씨, 은박풍선 아저씨, 자잘한 장난감 파는 아저씨들이 용케도 알고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꼭두각시' 무용을 했다. 연습 내내 업히지 않아 애태웠던 여자 짝꿍도 무대체질이었는지 그날은 많은 관객들 앞에서 찰싹 업혀 아들의 시름을 달래주었다.

운동회 프로그램은 이 학교나 저 학교나 거의 정형이듯이 이날도 꼭두각시, 기마전, 박 터뜨리기, 학부모 줄다리기, 강강술래 등이 펼쳐졌다.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응원가며 운동회 진행 방법은 몇 십 년을 두고 바뀌지 않는 흔치않은 것 중의 하나란 생각에 아련한 향수가 전해져왔다.

여러 가지 게임도 즐거웠지만 사물놀이 반 학생들의 공연은 특히 신이 났다. 우리의 난타가 세계에서도 각광을 받듯이 사물놀이 패 역시 자랑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이다. 넓은 장소에서도, 적은 인원으로도 장내를 휘어잡을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우리 농악인 것 같다.

그 흥겨움 때문이었을까. 평소엔 어림없는 불량 아이스크림도 솜사탕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사줄 만큼 마음이 후해졌다.

아들 친구네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행사가 연기되는 바람에 우리는 단촐 했지만 앞에 보이는 가족은 대가족이 모두 출동한 것 같았다. 아이 부모와 조부모님은 물론 큰아빠네, 작은아빠네까지 모두 출동하여 가족이 총 20여 명은 족히 되는 듯했다. 다들 바쁘게 사는 요즘시대에 조카들의 운동회까지 챙기는 그 집안의 놀라운 결속력이 참 좋아보였다.

더욱이 일행 중에는 중증 장애인이 있어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한마디 불평 없이 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감동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장애가 심한 가족이 있는 경우 되도록 외출을 삼가하는데 반해 이 가족은 긍정적인 사고 때문인지 일행 모두 즐겁게 참여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모든 운동회의 일정이 끝나고 운동회의 백미인 이어달리기만 남았다. 운동회의 꽃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청백계주시간, 다소 각자 얘기에 한눈 팔던 사람들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응원하는 시간이다. 청백 우승의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이어달리기는 그래서 행사를 장식하는 맨 마지막에 배치하게 되는데 나는 긴장되기 시작했다.

힘껏 뛰고 있는 아들
힘껏 뛰고 있는 아들 ⓒ 홍미식
계주를 위해 저만치 대기하고 있는 늦둥이 아들이 너무 대견하다. 생김새가 곱상해 꽃미남으로 불리는 아들이 계주선수가 된 것에 의아해 하며 아들친구 엄마들 역시 열심히 응원해 주었다.

마침내 아들이 속한 백팀이 계주에서 이기며 운동회는 백팀의 승리로 끝났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운동회다운 운동회,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해지며 운동회에 대한 감동이 많이 퇴색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운동회는 흥겹고 즐거운 마을잔치라는 걸 다시금 되새기며 이렇게 운동회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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