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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을 오른다. 마음이 맑아질 때 문득 오름이 그리워지면 쉬이 발길이 닿는 오름을 찾는다. 완만한 곡선을 그린 오름의 허리는 이내 가파른 호흡을 보듬어 안고, 휘바람을 재촉한다. 그리고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방울을 훔쳐낸다.
신이 빚은 여인인가. 태고적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오름, 신비로움은 모두를 사랑하라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다. 나무, 꽃, 벌레들이 모두 오름의 품 안에 있다. 어느 덧 눈이 녹는다.
'인간만사 세옹지마'라 했던가. 오름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있다. 어미 뱃속에서 갓 태어난 생명의 푸른 싹이 있고, 들판에서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있다. 그리고 어느덧 돌아가야 할 죽음의 그림자가 오름엔 있다.
오름의 선 속에 숨어 있는 맵찬 기운들. 어느 날 매서운 칼바람을 여지없이 보여주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살 따스한 알몸뚱이를 온전히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으로, 밝음으로 가파름이 있다가도 어머니의 봉긋한 가슴처럼 아련한 부드러움을 손수 보여준다.
이방의 무리가 오름의 허리를 잘라내도 오름은 쉬이 성을 내지 않는다. 때론 생채기 나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오름은 '변함없이 사랑하라'며 준엄히 타이르는 듯하다.
진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오름을 오른다. 내가 오름을 오르는지 오름이 나를 오르는지 모를, 그 오름을 오른다.
| | 절제 속에 드러낸 오름의 속살 | | | <오름오르다>의 사진작가 고남수 | | | |
| | ▲ 사진작가 고남수 | ⓒ양김진웅 | | 10년 간 오름과 오름의 꽃만을 찾아다녔다. 많은 이들이 아래에서 바라다 보는 오름의 아름다움을 찍었다면, 그는 오름에서 본 오름의 내면을 주로 흑백필름에 담아왔다. 단순한 화면구도 속에 오름의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제주에서 사진작업실 <꿈을 찍는 방>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늘 꿈을 찍으려 한다. 하지만 마냥 꾸는 꿈은 아니다. 철저히 현실에 뿌리박은 그의 꿈꾸기 방식은 눈에 보이는 미학을 찾기보다 그 이면을 주목한다.
두모악에 묻힌 故 사진작가 김영갑씨가 제주자연과 오름에 대한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면 그는 제주인의 눈으로 오름 속에 숨어 있는 삶의 내면을 들춰내려 했다. 상당수 오름 사진이 어두워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내면을 보여주려는 욕심때문이다.
그의 오름 사진 컷을 가만이 들여다 보면 아름다운 풍광 속에 숨겨진, 제주 땅에 휘몰아쳤던 고난의 역사가 보인다.
2001년 서울과 제주에서 개인전 '오름 오르다'를 시작으로 2003년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초대전으로 '오름사진 기획전'( Moving Korea Project - Oreum)을 치렀다. 그의 오름 사진을 본 이성복 시인(54)과 함께 2004년 월간 '현대문학'에 오름 에세이를 연재했고 연재글은 이후 단행본 <오름 오르다>로 출간됐다.
한편 고씨는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일본 홋가이도 아사히가와에 있는 히라마갤러리에서 오름사진 초대전('오름 오르다')을 열고 있다. 위 사진은 작품 25점 가운데 일부.
이번 전시는 지난해 한일 교류전에 참석차 제주를 찾았던 일본 미술작가 후지 다다유키, 아라이 요시노리가 그의 작품을 접한 뒤, 히라마갤러리 관장인 아키노리 히라마에게 적극 추천하면서 이뤄졌다. / 양김진웅 | | | | |
덧붙이는 글 | 사진작업실 '꿈을 찍는 방'(www.nsk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