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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도 비표준어인 '쌉싸름하다'를 쓴 경우는 많다. 어쩌면 우리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측면도 많다.
언론에서도 비표준어인 '쌉싸름하다'를 쓴 경우는 많다. 어쩌면 우리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측면도 많다. ⓒ 김동식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우리말이 다 그렇지 뭐"라며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거나 이야기 속에서 '쌉싸름'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버릇처럼 '쌉싸래하다의 잘못'이라는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표준어를 사용하여야 할 언론매체에서도 '쌉싸름하다'는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맞춤법이 틀렸다고 꼬집지 않는 것은 우리 언어생활 속에 이미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다.

<오마이뉴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2000년부터 '쌉싸름'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뉴스를 검색했더니 49개 기사가 펼쳐졌다. '쌉싸래'로 작성된 경우는 25개 기사에 불과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기사흐름에 따라 '쌉싸름하다'와 '쌉싸래하다'를 모두 사용하는 기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글을 쓴 사람들도 '쌉싸름'으로 표현해야 할 때와 '쌉싸래'로 표현해야 할 때를 적절히 구분하여 쓰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 표현한 문장 안을 들여다 보면 그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쌉싸래'는 맛을 음미하는 느낌이 얇고 짧으며 분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비표준어인 '쌉싸름'은 이와는 달리 맛을 음미하는 느낌이 깊고 길며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쌉싸래하다'는 국어대사전에 어떻게 나와 있을까? 맛이 조금 쌉쌀한 듯하다로 풀이되어 있다. 쌉쌀하다는 조금 쓴 맛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생활에서 통용되고 있거나 대부분의 언론매체에서 다뤄진 '쌉싸름하다'는 조금 쓴 맛만을 표현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혀·목구멍·코 등이 자극을 받아 입안이 아린 듯 시고 쓰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짐작된다.

언어사용자의 느낌이나 뜻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골라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말 자원을 더욱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길은 아닐까. 대개 언어는 문화를 창조하는 바탕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 문화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우리 생활의 흔적이요, 자취이기도 하다.

한때 '쌉싸름하다'라는 말이 문화코드가 된 일이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대표적인 소설작품 'Como agua para chocolate(1989)'을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으로 번역한 책이 출간되고, 1992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우리 사회에 훌륭히 접목된 경우이다.

걱정도 되기도 하고 궁금증이 도져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8월 25일에는 온라인에 접속하여 국립국어원의 입장을 물어봤다.

"실생활에서 많이 쓰고 있는 '쌉싸름하다'는 유독 '쌉싸래하다'와 비슷한 말로 규정하지 않고 비표준어로 삼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공식답변은 며칠 뒤에 나왔다. 1년 남짓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응어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쌉싸름하다'는 현재 비표준어로 제시되어 있으나 '짭짜름하다/짭짜래하다', '씁쓰름하다/씁쓰레하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가능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표준어 사정을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국립국어원)"

바른말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사라져가거나 비표준어로 밀려난 우리말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것도 한글사랑의 길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한글날이다.

지난 2년간 중앙일간지에 등장한 '쌉싸름하다'

쌉싸름하면서도 달큰한 향이 입안에 가득 (문화일보 2003년 8월 21일)
때로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같은 간식거리 (스포츠조선 2004년 6월 2일)
연꽃차는 쌉싸름하면서도 오랜 여운이 남았다 (서울신문 2004년 9월 1일)
곰삭은 돌배술은 쌉싸름하고 달콤했다 (세계일보 2004년 10월 11일)
생식은 쌉싸름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한겨레 2004년 10월 13일)

달콤 쌉싸름한 성탄 선물세트 (동아일보 2004년 12월 8일)
사랑처럼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서울경제 2005년 2월 10일)
풋풋 쌉싸름… 봄이 씹혀요 (국민일보 2005년 2월 27일)
쌉싸름하고 향긋한 봄나물 (한국일보 2005년 3월 3일)
씀바귀는…이름처럼 쌉싸름한 맛이 난다 (중앙일보 2005년 3월 8일)

쌉싸름하고 깊은 맛이 일품 (매일경제 2005년 3월 31일)
달콤 쌉싸름한 '추억의 뮤지컬' 3파전 (조선일보 2005년 4월 21일)
쌉싸름하고 상큼하고 고소한 맛과 향을 지녔다 (한겨레 2005년 5월 18일)
쌉싸름하면서도 상쾌한 향이 나는 ○○○ (서울경제 2005년 5월 19일)
쌉싸름하고 달콤한 차 한잔에서 인생을 본다 (문화일보 2005년 5월 20일)

파우더의 맛 때문에 달콤 쌉싸름하다 (동아일보 2005년 7월 1일)
학창시절의 달콤 쌉싸름한 낭만 (경향신문 2005년 8월 2일)
가을 하늘 아래에서 먹던 쌉싸름한 상수리 묵 (조선일보 2005년 8월 14일)
쌉싸름한 무순, 아삭거리는 오이 (중앙일보 2005년 8월 18일)
쌉싸름한 맥주에 즐거워진 여정 (매일경제 2005년 9월 4일)

* 보도일자는 인터넷 기사등록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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