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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있는 펜션에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관객도 배우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춘천에 있는 펜션에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관객도 배우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 춘천거기
진실게임 그 자리에 <춘천 거기> 극작가가 있다면 묻고 싶다. '혹시 불륜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어떻게 그리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나요?' 벌주로 답변 회피하기 없음. 흑기사도 불가.

유치하게도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건 수진과 병태가 나누는 대화 때문이기도 하다. 춘천에서 생일상을 받은 수진은 잠시 '제자리'를 벗어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이에 병태가 수진이 말한 제자리가 '제 자리 걸음'에 제자리인지 '자기 자리'에 제자리인지 묻자 이렇게 답한다.

"내가 말한 건 일탈의 의미인데 '제 자리 걸음'에 제자리도 포함시켜야겠다. 일탈을 해봐야 발전이 있고, 고이지 않고, 썩지가 않으니까."

화관을 쓴 독백소녀, 시를 읊다

작가 수진은 속 썩이는 짝이 없는 대신 자신이 쓴 희곡 속 독백소녀를 걱정한다. 암전이 되기 직전마다 등장해 독백을 하는 데 뜬금없을 것 같다는 우려다. 그래서 머리에 화관을 씌워 어색함을 덜고자 한다.

사실 이 독백소녀는 <춘천 거기>에도 등장한다. 극 속 수진의 희곡이 <춘천 거기>의 대본이 되는 '이중구조'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화관을 쓴 독백소녀는 덜 어색했을까. 관건은 소녀의 차림이 아니라 그녀의 말일 것 같다. 적어도 대학생 커플에게 한 독백은 훌륭하다.

"바람에 우산을 젖히듯 달려들고/ 무심히 팔자 좋게 술 한 잔 떠올리는 궁핍한 청춘아/ 멍한 틈 사이사이로 정신없이 빠져나가는/ 하루의 끝자락마저 보내놓고/ 한숨으로 저녁 짓는 박약한 청춘아/ 비도 멎고 바람도 쉬고 술도 깨었는데/ 길게 남아 찰나로 마주한 인생에 맞담배/ 꼬다무는 청춘아"

'이중구조'와 같은 형식미가 주는 보너스는 한 가지 더 있다. 관객이 여성이라면 극중 잘생긴 영어강사 지환과 연극 '젓갈과 동치미'를 보는 행운을 잡을 수 있다. 그 방법은 직접 관람을 하면 알 수 있을 터. 배우와 함께 무대에 서 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일 것이다. 관객과 호흡하려는 극단의 의지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더하는 장치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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