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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정훈이 진짜 전학가요?"

어른만한 키에 빠른 달리기 실력, 웬만해선 실수가 없는 완벽한 드리블. 축구를 얼마나 잘 하는지 나머지 열 명이 덤벼도 워낙 박주영처럼 날쌔고 기민한 정훈이(가명). 주변의 축구 명문 초등학교마다 눈독을 들이며 부모와 학생을 설득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였지만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한 건 아이가 내성적이어서 전학이라는 낯선 환경을 싫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아이만 데려가면 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리라는 기대와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어 차라리 축구를 안 하겠다는 아이의 줄다리기가 점점 그 긴장감을 더하더니 드디어 결말이 나고 말았습니다.

축구명문학교의 감독님과 부모님이 하교 직전 학교로 찾아와 아이와 얘기를 함으로써 전학이 결정된 오늘.

정훈이의 표정은 어둡고 이를 보는 교실의 다른 아이들 표정은 더 어둡습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지금까지 같이 지내 온 아이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선생님이 오는 일보다 더 큰 이슈는 누가 어디로 전학을 가고 오느냐인데 그 당사자가 우리 반 최고의 인기스타였으니.

전학을 못 가게 해 달라, 안 가면 안 되느냐, 우리가 정훈이네 집에 가서 아빠께 잘 말해 보겠다는 둥 역시 아이들 수준의 방책이 잠시 거론되었지만, 자신들의 이별이 자신들의 의지에 의할 수 없는 어린이 처지라는 걸 손쉽게 인정하고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듯했는데 두세 명이 남아 있다가 담임인 저에게 옵니다.

"내일 음악시간에요. 경은이(가명)가 정훈이를 위한 리코더 연주를 한데요. 그래도 되나요?"

▲ 어떤 노래를 연주해 줄까. 뒤로 약간 돌아 앉아 호흡을 가다듬은 아이의 모습에 아이다운 모습은 이미 없고 천사가 내려와 앉은 것 같습니다.
ⓒ 송주현
하이고, 요놈들. 예쁘기도 해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어찌 이 아이들에게만 일상사일까마는 이 녀석들은 그런 사소한 일조차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묶어서 보내고 싶은 겁니다.

"사실은요, 우리 반에서 정훈이 좋아하는 애들이 되게 많은데요. 그 중에요. 경은이가 젤로 좋아한다니요."

아이는 제 귀에 대고 정훈이를 둘러 싼 우리 반 애정의 역학관계를 한참 설명합니다. 귀여운 녀석들. 아이들이 애정이라야 같은 동 사는 인연, 혹은 엄마나 아빠들끼리 중고등학교 동문 같은 인연이 원인이 되지만 어른인 제가 볼 땐 별스럽지도 않을 일인 아이들의 애정은 한 아이의 전학을 계기로 저처럼 메마른 한 어른의 가슴을 한없이 흔들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 정훈이가 그 마음을 오래 기억할 거다. 그리고 축구도 더 잘하게 될 거야."

아이는 자리로 돌아가서 리코더로 이것저것을 불어 봅니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 시각. 아이의 친구는 아이에게 차마 빨리 가자고는 못 하고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아이를 달랩니다. 아이의 서운한 마음을 빛보다 빠른 속도로 감지하는 아이들.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이미 저렇게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저 아이들에게 대체 어떤 삶의 공부가 더 필요한 걸까.

▲ 이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친구들이 달려들어도 이 아이의 서운함은 쉽게 가시지 않나봅니다. 저 아이가 이성의 사랑을 알까마는 그 마음 씀씀이가 참 곱게만 보이는 건 부러워서겠지요?
ⓒ 송주현
먼 길 떠나는 님을 위해 짚신을 삼듯, 전학 가는 친구를 위해 음악을 준비하는 아이. 세상에 저렇게 진실하고 아름다운 음악가가 또 있을까. 저 아이가 철이 들면서 더 이상 저런 식의 이별은 준비하지 않겠지만 저 녀석은 나중에 커서 이별 하나를 하더라도 참 멋지게 할 것 같구나. 저런 아이와 사랑에 빠질 미래의 어느 청년은 얼마나 복 받은 청년일 것이냐. 부럽고 애잔하여라.

저 아이 자신에게도 이 장면은 평생 예쁜 기억으로 남겠지. 나도 어릴 적 저런 이별을 한 번쯤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가 가고 오는지, 계절이 지나가는지 마는지 한 번도 관심을 가져 보지 못하고 그냥 살아 온 제 삶이 저 아이의 예쁜 마음에 비춰 못내 아쉬워지는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아이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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