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기에 보부청을 설치하신 일은 잘 하신 일입니다요.”
“재면이가 그래도 잘 해주고 있어 다행이야. 그게 다 천희연 자네 덕인 줄 아네만.”
“과찬이십니다요.”
천희연이 겸연을 떨었다. 병인양요가 끝난 직후에 보상과 부상의 조직을 묶어 보부청을 만들고 대원군이 도반수(都班首)가 되었고 대원군의 큰아들 이재면이 청의 사무를 관할하였다. 그 이재면 옆에서 청의 실질적 업무를 관장하고 전국 팔도 곳곳에 뻗치는 그들의 세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천희연의 일이었다.
“내일 수뢰포 시방식이 있음은 기억하시는지요?”
“아다마다 훈련대장에게 그 일을 맡겼더니 기어이 결실을 보는구먼. 내 신관호 그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크이.”
청국에서 들여온 <해국도지>를 이용해 물에서 터지는 무기를 만들어 놓고 대대적인 시방 행사를 갖기로 한 일을 잊고 있을 리 없었다. 내우외환의 시기에 백성들에게 사기를 북돋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오나 너무 믿지는 마옵소서”
“사람이란 믿는 만큼 크는 게야.”
“근간 무장들의 움직임 심상치 않습니다. 단도리를 잘 하셔야 하올 줄 아옵니다.”
“내 장순규에게 들어 알고는 있어. 차 떼고 포 떼니 쓸 놈이 없어 자리를 맡기긴 했네만 결국 권세란 권세를 쫓기 마련. 어찌할 승산이 서기까진 결국 이놈이나 저놈이나 권세를 쫓아 움직일 게야. 그러니 무에 걱정이 있는가. 이 몸이 권세인 것을. 끌끌끌끌….”
대원군이 대놓고 자신을 권세라 칭했다. 천하장안이 아니고서는 절대 내보이지 않는 속내였다.
“그렇긴 하오나… 매사 불여 튼튼이온지라… 모쪼록 쉰네도 정탐의 끈을 놓치지는 않겠습니다요.”
“그래 그래 내 자네들만 믿으이.”
“망극하옵니다. 대감.”
천희연이 이마를 방바닥에 닿도록 조아렸다.
4
운현궁을 나서기 무섭게 배고개로 걸음한 천희연이 이주하의 객주에 닿았다. 달랑 종자 하나를 달고 나선 몸이었건만 객주 머슴이 단번에 알아보고는 후다닥 안 채로 내 뛰었다.
“아이고 나으리. 소인을 부르면 되오실 것을, 이렇게 손수….”
이주하가 버선발로 뛰어 나오며 반갑게 뇌었다. 굳이 신을 신는데 얼마나 지체를 하겠는가만은 짐짓 성의를 보인답시고 일부러 맨 버선으로 뛰어 나온 티가 역력했다.
‘배알도 없는 놈!’
천희연이 속으로 나부렸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장바닥에서 마주치면 파락호 흥선군과 어울리는 자신을 경멸해 마지 않았던 자가 입장이 바뀌었다고 저리도 간사를 떨었다.
“근자의 시정 소식일랑은 이미 다 장순규 나리께 다 말씀을 올렸는뎁쇼.”
천희연을 안채로 이끌자마자 이주하가 궁금한 듯 입을 열었다.
“이상한 점이 있단 말이지. 각 도에 유민이 들끓어 화적패가 횡행한다는 소식이 속속 들어오는데 유독 평안도 쪽만 조용하다는 말이지. 관에서 들어오는 자잘한 장계 외에 이렇다할 녹림패도 없는 듯 하고….”
“황해도와 평안도 쪽에 연이 깊긴 합니다만 아직 저 역시….”
대원군이 집권을 하자마자 잽싸게 천하장안에게 선을 대어 객주를 일신한 이주하였다. 장틈 깍정이들을 휘하에 두고 대원군이 나설 수 없는 지저분한 일들을 직접 처리해 줄 뿐 아니라, 도성 내 잡다한 민정과 주로 거래하는 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사정을 낱낱이 물어다주는 소식통이었기에 천희연이 일말의 희망을 걸었으나, 자신 없는 답변뿐이었다.
“평안도 일대에서 광산을 한다는 권기범이라는 이가 있어.”
“아, 예… 그 자.”
천희연이 팔짱을 끼며 말을 내자 이주하가 얼른 아는 체를 했다.
“그런데 그 치가 바치는 원납전이 벌써 삼십만 냥이 넘어.”
“뭘 특별히 바라는 바가 있었습니까요?”
“원래 장사하는 치들이 바라는 게 별 거 있나. 그저 관의 손 안 타고, 애지간한 범법이야 눈 감아주고, 세는 조금만 걷고, 뭐 그런 것 아니겠나. 제가 미는 관원들 임지나 좀 잘 봐주었으면 하는 것하고….”
“그러기엔 원납전의 규모가 너무 크지 않은갑쇼?”
“크지. 우리 쪽 사람을 보내 알아보기는 했는데 원체 그 자의 사업장도 크기는 크다던구먼. 이것 저것 손 대는 것도 많고. 그런데 말이야….”
천희연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이래저래 구리는 게 많아. 일전에 원납전 내러 왔을 때 사람을 하나 붙여놨더니 발각되어 하마터면 치도곤을 당할 뻔 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내 자네에게 따로 청을 넣었던 것이었고….”
“아휴 말씀 마십시오. 그때 나선 놈이 태봉이라고, 한양 바닥이 떠르르한 왈짜놈이 있사온데 권기범이라는 자에게, 갓 쓴 놈이라 하니 일행 중에 필시 그 자일 것입죠. 녜. 아 그 자에게 단 일합에 피떡이 되어 왔습니다요.”
“그럼 그때 그 일이 짜고 한 일이 아니었단 말인가? 모환가 뭔가 하는 계집 아이를 보내려고.”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