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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분교에서는 오래된 도토리나무를 힘들게 보내야 했다. 2년 전부터 돌아갈 준비를 하며 새싹을 많이 내놓지 않던 나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역사만큼이나 긴 나무를 보내기 위해 몇 달간 고심을 했고 살릴 방법을 찾았으나 워낙 많은 경비가 드는 일이었다.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서 아무런 사심없이 자신의 길을 예비하던, 마음마저 숙연하게 했던 할아버지 도토리나무가 남긴 밑둥을 보는 일이 서러웠는데, 이제는 욕심을 벗어버린 채 키 큰 코스모스 사이에서 시원스레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의 뒷모습이 깔끔해서 보기 좋다.
그 많은 잎새들을 품고 살았던 지난 여름이 얼마나 아팠을까? 좀더 살리려고 인공적으로 주사를 주고 약을 투여하지 않은 채 편히 쉬게 해준 선택을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큰 바위 곁에 심어져서 더 이상 뿌리를 펼 수 없어 삶을 접은 그의 선택을 받아주기로 했다. 때로는 거슬러 오르는 일이, 운명을 거역하는 일이 더 아름답지 않으니 받아 들이는 순종도 미덕이라고 내게 속삭이는 나무의 귀엣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큰 나무는 그가 지닌 오랜 추억 때문에 마치 사람처럼 그리움을 남긴다. 봄이면 파릇한 싹을 틔우며 아이들의 등교를 반기던 우람한 허리, 여름이면 그 큰 그늘 아래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점심을 먹던 여름 한낮의 추억, 가을이면 고운 잎을 자랑하며 도토리를 탐하며 오르내리던 다람쥐를 품어주었고, 겨울이면 빈 가지로 서서 무욕의 시간을 자랑하던 여유로움이 아름다웠던 할아버지 나무는 이제 내 마음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나도 저 나무처럼 돌아갈 시간을 재고 서 있는 이 가을. 아이들과 함께 살며 행복하고 마음 아파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나무만큼이나 그리운 시간을 남길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나의 나무에 잎새로 만나 졸업을 한 아이들과 처음 담임해 본 1, 2학년 꼬마들이 주던 순결한 웃음과 사랑은 내 나무에 영양제 주사를 놓아주어 몇 년은 더 씩씩하게 푸른 잎새를 달게 해줄 것 같다. 이 가을엔 더도 덜도 말고 나무만큼만 살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학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할아버지 나무를 보내고 내년 봄에 어린 나무를 심어 새 식구를 생각합니다. 이 분교에 아이들의 소리가 산을 넘고 계곡을 타고 흐르길 간절히 바랍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