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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청에서 한계령 가는 능선 풍광.
끝청에서 한계령 가는 능선 풍광. ⓒ 최삼경
설악의 시월은 그러니까, 성장한 여인네의 풍성한 몸피를 연상시킨다. 어디선가 툭! 하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도통한 듯 다람쥐들은 도망가지도 않는다. 바람이라도 불면 수천만 화소도 넘는 색들이 일제히 넘실거리고, 쏴아~ 하는 갈잎소리는 산행을 나선 이들의 몸통을 그대로 통과해 "무어든 잡지 말고 놓아 버리라"는 대자연의 체득을 들려주는 듯하다.

봄꽃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밀물 같은 것이라면, 단풍은 북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썰물이라 할 만하다. 또한 꽃은 저 산 아래로부터 치받혀 올라오고, 단풍은 산꼭대기로부터 내려 붙이는 화답이라 할 만하다. 설악의 가을은 수많은 색들의 봉기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던가, 서로 어울리지만 똑같지는 않은 오색단풍이 대청봉을 위시한 봉우리마다 점령군처럼 주둔해 있었고, 그 골짜기마다 형형색색의 영상들로 진군 중이었다.

설악산 단풍.
설악산 단풍. ⓒ 최삼경
설악산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절세미인"

흔히들 금강산이 수려하기는 하되 웅장한 맛이 없고, 지리산이 웅장하기는 하되 수려하지는 못한데 설악산은 웅장하면서도 수려한 맛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육당 최남선도 <설악 기행>에서 "금강산은 너무 드러나 있어 아무나 손을 잡는 술 파는 색시 같지만 설악산은 절세미인이 골짜기 속에 있어 물 속의 고기를 놀라게 하는 격"이라 하여 설악산을 금강산보다 높게 평하기도 하였다.

설악산은 미시령과 점봉산을 잇는 주 능선을 따라 동해 쪽을 외설악이라 하고, 내륙 쪽을 내설악이라 부른다. 외설악은 소, 중, 대청봉, 화채봉, 관모산, 천불동계곡, 수렴동 계곡, 백운동계곡, 토왕성 폭포 등 기암절벽과 큰 폭포들이 주를 이룬다. 내설악은 대승령, 귀떼기청봉, 삼형제봉, 장수대, 백담계곡, 수렴동계곡, 백운동계곡, 가양동계곡, 와룡, 유달, 쌍폭, 대승 등의 폭포와 백담사, 봉정암 등의 사찰들이 늘어서 있다.

흘림골 풍광.
흘림골 풍광. ⓒ 최삼경
등산로 결마다 줄을 잇는 산행객중 하나가 "이렇게 붉고 노란데, 왜 설악산이라 부르는 거지?"하며 묻자, 일행은 "겨울에 눈이 많으니 그렇겠지"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설악산이라는 이름은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도 나올 만큼 오래되었다고 한다. 조선 헌종 때 여류 시인인 금원이 쓴 <동호서락기>에는 봉우리 바위마다 빛깔이 희기 때문에 설악이라고 한 대목도 보인다. 지질학계에서는 중생대 말에 묻혀 있던 암장이 지층을 뚫고 나와 바위가 되었는데 그것들이 바람에 닳고, 눈비에 쓸려 장관을 이루게 된 것으로 본다.

단풍은 한해살이 잎들의 마지막 향연

평탄하던 주전골에서 흘림골로 오르는 깔딱고개에 이르자 "죽겠다"는 소리가 연방 이어진다. 그것은 펼쳐지는 산의 환상적 풍광에 매료됐다는 것일 테다. 사람들은 쓰지 않던 다리 근육들의 갑작스런 혹사로 죽을 맛임을 표하면서도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다. 등산로 입구마다 서 있는 관광버스와 행락객들을 보며 설악산은 사계절마다 독특한 풍광을 보여주지만, 자주 등산을 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겐 그래도 이 가을의 단풍이 제일로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악산 풍광.
설악산 풍광. ⓒ 최삼경
단풍은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식물들의 방어 체계 작동으로 이루어진 표백 현상일 뿐이지만, 그만큼 한해살이를 살아낸 잎들의 마지막 향연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런 면에서 단풍은 모든 낡아 가는 존재들의 대표 선수인 셈이다. 어쩌면 그 낡아 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청춘보다 더 화사하게 증거하는 간증인 것이다.

이제 해발 500m선 아래까지 진출하고 있는 단풍들과 그 단풍들을 구경하러 온 인생의 황혼녘에 닿은 어르신들을 보면서 낡아간다는 것의 성스러움과 함께 그동안 걸어온 수고로움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함의 마음을 새삼 느꼈다면 좀 지나친 감상일까? 어찌됐든 설악의 광활한 단풍림에서 마음까지 붉게 물든 채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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