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차예량은 아예 장판수의 발아래 엎드려 간청했고 장판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차예량을 일으켜 세우려했다.

“이럴 것 까지 있네? 내 그리 할 터이니 이번에는 내 말을 들어주게.”

차예량은 밝은 표정으로 장판수의 손을 잡았다.

“말만 하시오! 어찌 되었건 장형의 일보다 더 힘들 수 있겠소?”

장판수는 얘기가 길어질 것이니 자리를 잡고 앉아 말을 나누자고 했고 차예량은 자신이 숨어 있는 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장초관님!”

집에 있던 계화는 뜻밖에도 장판수가 들어오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버선발로 뛰어 나갔다.

“그간 고생이 심하셨나보옵니다! 모습이 말이 아니옵니다.”

계화의 진심어린 걱정에도 불구하고 장판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니래 왜 아직도 여기 있네?”

계화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장판수의 그런 모습을 한두 번 보아온 것이 아니기에 상을 보아오겠다며 재빨리 자리를 비켜주는 것으로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얘기할 것 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계화는...... 음...... 장초관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차예량은 귀 밑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거렸다. 장판수는 그런 차예량의 말과 모습에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머리를 꺼내었다.

“심양에 가서 조선 사람들을 아무 말썽 없이 데려오려면 많은 몸값을 지불해야 하네! 허나 지금 우리 수중에 가진 재물을 다 털어 봐야 얼마나 되는 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단 말인가?”

장판수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차예량은 정말로 머릿속으로 셈을 해 보았다.

“은 열 냥 정도면 속환해 올 수 있다고 들은 듯하오. 그러니 기껏해야 서넛......”
“이보라우 차 아우!”

장판수는 핏대 오른 얼굴로 주먹을 쥐어 방바닥을 힘껏 내려쳤다.

“내래 오랑캐들에게 돈을 주고 조선 사람을 데려올 생각은 없네! 억지로 잡혀간 것도 원통한 데 어찌해서 재물까지 바쳐야 한단 말인가! 지금 심양에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재물 하나 없는 평민들이 대부분이네! 양반네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재물을 써서 자기 식솔들을 배오는 바람에 포로들의 몸값만 올렸다는 얘기까지 있네!”

“그렇다면 어찌 하실 작정입니까?”

차예량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판수를 바라보았다.

“차 아우가 심양으로 가서 해야 할일은 자명하네. 잡혀간 조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청의 동태를 파악하는 한편 주변 지리를 잘 알아두게나.”

차예량은 입을 딱 벌린 채 장판수를 쳐다보았다.

“아니 장형! 그렇다면 포로들을 그냥 데리고 돌아오시겠다는 겁니까?”
“그렇네.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이 데리고 올 작정이네.”
“하지만 장형!”

차예량은 손을 내저으며 난색을 표했다.

“지금도 가끔 심양에서 도주해온 이들이 있습니다! 허나 그들은 각 고을에서 다시 잡아들여 심양으로 다시 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도주한 사람을 잡지 못하자 무고한 자를 대신 잡아 심양으로 넘기는 경우도 있을 지경입니다!”

“나도 듣는 귀는 있다우. 기런 일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어.”
“그런데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이런 단 말씀입니까?”
“이보라우 차 아우.”

장판수는 불끈 쥐었던 주먹을 풀고 차예량을 다독이듯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심양에서 빠져나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조정에서 무리하게 이를 잡아들일 성 싶은가? 그들에게 딸린 식솔까지 따져보게나! 만약 그랬다가는 나라가 뒤집히고 말걸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