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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고 있노? 얼굴 다 탄다."
"벌써 다녀오시는 거예요? 오늘은 환자가 별로 없었나 보네요."
"그래. 다른 날보다 환자가 덜하더라. 하기야 지금 한창 바쁠 철이니…. 자. 이거 먹거라."
"뭐예요? 어머나, 웬 홍시를 이렇게 많이 사오셨어요?"
"어미 홍시 좋아하잖냐?"
"홍시는 저보다 아버지가 더 좋아하시면서…."
다 큰 딸자식 간식거리 사 오시는 아버지
볼이 퉁퉁 부어서야 아버지 입 속의 비밀을 알아채고 득달 같이 달려간 치과. 약 한 달간을 잇몸 치료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백내장 수술까지 하시게 되어 매일 외출을 해야 했습니다.
아침마다 아버지는 혼자 가실 수 있다고 우기고 저는 아직은 안심이 되지 않으니 함께 가야 한다고 우기고…. 아버지와 저의 그런 실랑이가 멈춘 지 채 일 주일도 되지 않습니다.
심한 감기몸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열병까지 겹친 지난주 월요일.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무슨 하나님 말씀처럼 여기는 아버지는 오라는 날 안 가면 천지개벽이라도 하는 양 싶으신지 결국 혼자 병원으로 향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동네 어귀에서 사라질 때까지, 다시 동네 어귀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의 5시간여. 뼈 속까지 쑤셔대는 감기 몸살보단 엄습하는 불안으로 저는 천국과 지옥, 그 먼 거리를 종종걸음 쳤습니다.
그날 이후로 혼자서 병원을 다녀오시겠다는 아버지의 고집은 더 쇠심줄이 되셨습니다. 하여 아버지와 저는 서로 한 가지씩 양보를 하기로 했습니다. 김포에 위치한 안과는 제가 모시고 가는 대신 마을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치과에 가실 땐 혼자 다녀오시게 했습니다.
마을버스 한 정거장 거리라고 해도 마음이 안 놓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딸 자식 도움 없이 당신 스스로 뭔가 하고 싶으신 그 마음을 무작정 외면해서도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혼자서 치과를 다니기 시작한 아버지께 새로운 즐거움이 하나 생겼습니다. 마당을 서성이다 동네 어귀로 모습을 드러내는 아버지를 발견할라치면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까만 봉지가 먼저 시선을 잡아끕니다.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내 사랑 '홍시'
이 딸 자식에게 먹거리를 사다 주시는 일. 아버지의 새로운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찹쌀떡을, 한 번은 찐빵을, 그리고 이번엔 발그스름한 홍시가 바로 그 까만 봉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짝지근하니 군침이 돕니다.
"아버지. 드셔 보세요. 입에 침이 가득 고이는 걸 보니 아주 달 것 같아요."
"그래. 어서 먹어라. 이 애비 신경 쓰지 말고…."
"아버지가 드셔야 제가 먹지요. 어서 하나 드셔 보세요."
터질 듯한 홍시를 반으로 갈라 아버지께 내밀었습니다. 한 입 베어 문 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입 한가득 홍시를 밀어 넣은 아버지가 멀거니 보고만 있는 이 딸자식이 안타까운 듯 어서 먹어 보라 살가운 고개짓이 분주하십니다. 홍시에 살짝 혀를 대어 보곤 냉큼 입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순간 달짝지근함이 온 입안을 황홀하게 합니다.
워낙에 홍시를 좋아하는 건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았습니다. 해서 홍시가 지천인 가을은 제가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했습니다. 높아도 너무 높고 푸르러도 너무 푸른 가을하늘도 수줍은 듯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향연도 비단결 같은 감미로운 가을 바람도 발그스름한 윤기가 달짝지근함을 유혹하는 홍시엔 비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3년여. 가을이란 계절이 진저리치게 싫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시댁으로 들어가게 되고 다시 분가를 하고…. 그 3년이란 세월 동안 가을이란 계절이 오면 그리고 과일가게에 수줍은 새색시마냥 발그레한 홍시가 즐비할 때면 혼자 계시는 아버지 생각에 가을도 홍시도 그저 사무치는 그리움 덩어리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 가을, 켜켜이 쌓인 과일가게의 홍시를 볼 때면 무작정 솟구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려 대기도 했습니다.
연애 시절, 홍시를 실컷 먹을 수 있어 가을이 좋다고 했던 것을 기억한 남편이 매일 홍시를 사다 나르는 것에 괜히 심통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시골 사는 시외삼촌께서 부친 한 박스나 되는 감이 냉동실에서 홍시가 되어 갈 때는 냉장고 근처에 얼씬도 하기 싫었습니다.
올해는 물리게 홍시를 먹겠지요
작년 가을. 아버지와 함께한 그 가을에 제가 맨 먼저 한 일은 아버지께 홍시를 실컷 사드리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날마다 홍시를 질리게 드시면서도 정작 앞에 앉은 제겐 하나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혹시라도 제가 홍시를 뺏어 먹을까 봐 홍시를 드시면서도 흘끔흘끔 곁눈질로 저를 노려보곤 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가엾어서 아버지 앞에 놓인 홍시에 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와? 입가에 홍시라도 묻었나. 와 그렇게 빤히 쳐다 보노?"
"아버지! 이렇게 아버지와 마주 앉아서 홍시를 다 먹어 보고, 이런 날이 있기는 있네요."
"그래. 이런 날도 있구나. 해마다 가을이 되고 홍시만 볼 때면 어찌나 짠하던지…."
"왜요?"
"왜기는. 홍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니 생각에 몇 해를 홍시 근처도 안 갔다."
"아버지. 그럼 이 홍시 몇 해만에 드시는 거예요?"
"글쎄. 한 3, 4년 된 것 같구나."
"작년에 홍시 드시던 일 기억 안 나세요?"
"작년에? 나는 작년에 홍시 맛도 못 봤다."
순간 뜨거움이 가슴을 칩니다. 입가에 홍시 국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신 채 이 딸자식에게 그저 한 개라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뇌리에 선연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해를 이 딸자식 생각에 홍시 근처도 안 가셨다는데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당신 혼자 질리게 드셨다면 아무리 기억상실이라는 병을 앓고 계셨다손치더라도 아버지의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것 같았습니다.
올 가을, 아마도 아버지는 작년 가을 제가 아버지께 한 것처럼 제게 홍시를 질리게 사주실 것 같습니다. 그건 아버지 가슴에 깊숙하게 박힌 그리움의 가시를 빼내기 위한 애끓는 부정이라 감히 말하렵니다. 작년 가을, 저 역시도 가슴에 깊이 박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가시를 그렇게 빼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올 가을, 이렇듯 아버지와 마주앉아 그리움에 삭아 내렸던 가슴을 어루만져 봅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것 같았던 내 아버지의 메마른 가슴도 어루만져 드리고 싶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햇살이 함께하는 이 가을에 아버지의 가슴으로도 이 딸자식의 가슴으로도 행복이라는 빨간 단풍이 곱게 들길 소원해 봅니다. 홍시를 보듬은 가을. 이젠 마음 놓고 좋아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