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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DJ들의 기념 촬영
아마추어 DJ들의 기념 촬영 ⓒ 오창경
신혼 첫 부부싸움, 팝 CD 때문에

드디어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먹고 베란다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골라 놓은 음악 CD가 돌아가고 포도주도 잔에 채워지고 촛불이 켜졌다. 창밖에는 휘황한 도시 야경이 우리의 분위기 있는 밤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오리지널이 한 곡도 없어? 전부 다른 가수가 부른 복사판이잖아. 차라리 저런 음악은 안 듣는 게 좋아!"

갑자기 벌떡 일어난 남편이 오디오에서 CD를 빼내더니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다른 가수가 불렀으면 어때? 어차피 분위기도 비슷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CD를 그렇게 버리는 게 어디 있어?"

"뭐라구? 어떻게 비지스(Beegees)의 '비 후 유 아(Be who you are)'를 저렇게 부를 수가 있느냐고? 그건 비지스에 대한 모독이라구!"

남편은 나를 팝에 대한 문외한 취급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내었다.

"단지 원곡이 아니라고 CD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당신이야 말로 비지스를 모독하는 거야!"

사실 그 CD는 월간잡지를 살 때 부록으로 딸려온 것이었으니 정품이 아닌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오리지널 곡인지 아닌지 보다 '내 정서에 맞는 음악'이 더 중요했다.

"리바이벌을 하려면 정식으로 해서 원곡과는 다른 느낌이 있던가, 모창을 하려거든 분위기가 비슷하던가, 저런 음악은 '고속도로 뽕짝 메들리'만도 못 하다구."

"그냥 음악만 들어도 좋은 거지. 전문 지식까지 총동원해서 음악을 감상하면 더 머리가 아프지 않아? 나 같으면 그런 거 외울 시간에 공부를 했겠다."

나는 남편이 팝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펼치며 신혼 초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결코 지지 않는 입심으로 남편과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이 밤이 깊어 갈수록 언쟁으로 비화되었다가 급기야는 그 날 서로 등 돌리고 자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내 남편은 잘 나가던 음악다방 DJ!

사실 남편은 팝 음악에 조예가 깊은 디스크자키(DJ) 출신이었다. 하지만 결혼 전에 그 말을 듣기는 했어도 함께 차분하게 음악 감상 한번 못해 보고 만난 지 두 달 만에 졸속 결혼을 한 탓에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없었다.

게다가 신혼 초였기에, 단지 음악을 음악으로 듣는 나와 그 음악에 대한 배경과 가수에 대한 정보, 음악의 경향 등을 두루 꿰고 있는 디스크자키들의 음악감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어쨌든 신혼 초 분위기 있는 밤이 그렇게 깨진 이후, 남편은 드라마에서 귀에 익숙한 배경 음악이 흘러도 나보다 먼저 '아는 척' 하지 않는 배려를 해준다. 나 역시 음악에 관한 한 억지 논리로 남편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그 음악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둥 가수 이름을 모르겠다는 둥 해서 남편에게 해박한 음악 지식을 늘어놓을 기회를 주고 참을성 있게 들어주게 되었다.

남편이 직접 서울에 올라가 김광한씨를 만나서 아마추어 DJ들을 위해서 대전에 내려와줄 것을 부탁해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남편이 직접 서울에 올라가 김광한씨를 만나서 아마추어 DJ들을 위해서 대전에 내려와줄 것을 부탁해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 오창경
남편은 대학 시절 내내 공부는 뒤로 한 채 음악다방 DJ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시내 유명한 음악감상실 DJ로 소녀 팬 깨나 끌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우리 한창 학교 다닐 때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음악 프로를 당신도 알까?"
"어머, 나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 프로 들으면서 공부했고 엽서도 많이 보냈었는데 그 걸 모를까봐."

"그래? 내가 그 프로의 객원 DJ였잖아."
"정말?"

"수요일마다 아마추어 DJ클럽에서 음악을 선곡해서 틀어주는 코너가 있었어. 내가 그 DJ였잖아."
"어쩐지, 그래서 '아마추어 DJ클럽'이 전혀 낯선 명칭은 아니더라. 나도 그 프로를 들으면서 사춘기를 보낸 셈인데. 어쩌면 당신이 내가 보낸 엽서를 읽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 우리가 만났더라면 당신은 나를 쳐다도 안 봤을 거야, 그치?"
"……."

후환이 두려웠는지 남편은 내 억지소리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웃기만 했다.

'DJ 오빠'라 불러주면 나만의 DJ가 되어주겠다?

이제 남편에게서, 단발머리를 휘날리고 다니며 소녀 팬들을 몰고 다녔다는 왕년 DJ 오빠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제 남편에게서, 단발머리를 휘날리고 다니며 소녀 팬들을 몰고 다녔다는 왕년 DJ 오빠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 오창경
하지만 지금의 남편에게서, 목소리만으로도 가슴이 저렸던 소녀들의 우상 '음악다방 DJ 오빠' 같은 모습은 아무리 뜯어봐도 찾을 수 없다.

휘날리고 다녔다던 단발머리는 어느새 다 빠져서 주변머리만 남았고 낭창하던 허리는 군살로도 모자라 둥글게 부풀어 오른 중년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시골살이를 하게 되면서 음악에 취할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다보니 남편과 DJ는 더 멀어지게 되었다.

"당신 DJ에 대한 미련 없어?"
"젊은 날 한때 객기였지, 미련은 무슨…."

"그럼 '아마추어 DJ클럽' 시절 제일 추억으로 남은 게 뭐야?"
"당시 유명한 DJ였던 김광한씨를 섭외해서 우리 클럽에서 발표회를 한 일이지."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의 그 김광한씨 말이야?"
"맞아, 그 김광한."

"그 양반이 진짜 대전까지 내려와서 아마추어 DJ들을 한 수 가르쳤단 말이야? 그것도 당신이 직접 섭외를 해서?"
"못 믿겠어? 어딘가 내 앨범에 그 사진이 있을 텐데…."

당대의 유명한 DJ 김광한씨가 아마추어 DJ들에게 한 수 전수해주고 있다
당대의 유명한 DJ 김광한씨가 아마추어 DJ들에게 한 수 전수해주고 있다 ⓒ 오창경
정말 남편의 말대로 당대의 유명한 DJ였던 김광한씨가 있는 사진이 남편의 옛 사진첩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함께 살면서 한번도 '멋있다'고 여겨본 적이 없는 남편이 그 날은 달리 보였다.

"그런데 나한테는 한번도 당신이 멋지게 DJ 멘트를 날리며 음악을 들려준 적 없는 거 알아?"
"그랬나? 그럼 우리 집 마당에 낙엽이 떨어질 때쯤에는 음악 좀 한번 골라볼 게."

"당신 해마다 목련꽃 필 때, 은행잎이 물들 때 찾으면서 몇 년이 흘렀는지 알아?"
"분위기가 돼야 음악을 틀지. 그러면 당신도 나한테 '오빠' 하고 환호성을 질러줘야 하는데?"

"지금 그 나이에도 소녀들의 'DJ 오빠' 소리가 그리워?"

어느새 우리 집 마당가의 은행나무 너머로 저녁놀이 내려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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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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