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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아니 되느니."
다 무너진 폐가의 창호지문 안쪽에서 낮은 음성이 들렸다.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어디 이런 일 한 두 번 해봅니까요."
문 밖 마루에 걸터 앉은 사내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이마에서 턱끝까지 길게 찢어진 면상이 평탄치 않은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걸 쓰게."
방 안의 사내가 문틈으로 보퉁이 하나를 밀었다.
"수발총이야. 화승 없이 방포할 수 있으니 언제든 당길 수 있을 게고 또 두 발이 장전 되니 만약 한 발이 빗…"
"흘흘흘흘…"
주섬주섬 챙기는 말을 맺지 않았는데 흉터의 사내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나으리. 우린 그런 어름생이가 아니오니 긴 말일랑 접어 두소사. 그리고 두 발까지 쓰는 일도 없을 겝니다."
"그래. 얘기는 들어 알고 있네. 그저 그 명성이 사실이기만 바랄 뿐이네."
"저… 그리고 대금은 약조하신대로…"
흉터의 사내가 생긴 것 답지 않게 간사한 목소리를 내었다.
"예 있네."
미리 준비를 해 두었다는 듯 보퉁이를 던졌다.
"엽전 300냥과 은자 100냥은 지금, 나머지 은자 500냥은 일이 끝난 직후 자네들을 도성 밖으로 빼낼 때 건넬 것일세."
"하오면 나머지 은자 400냥은…?"
"그건 약조대로 함경도 두메에서 여섯 달을 무사히 은거하면 마지막 날에 사람을 보내 전할 걸세."
"그럼 소인 나리 말씀만으로 어음인양 여기겠습니다요."
"여부가 있겠나. 이녘이 또 그런 의리는 확실한 사람이 아니겠나."
"흘흘흘흘… 꼭 그래야겠습죠. 나리를 위해서나 소인을 위해서나…."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흉터 사내가 협박 같은 말을 던졌다.
[촤악-]
문창호를 뚫고 날이 시퍼런 환도가 비어져 나왔다. 칼끝이 정확하게 흉터의 사내 목젖 앞에서 멎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솜씨였다.
"바로 그 터진 입을 조심하란 말이다. 세 치 혀가 네 목을 감는 수가 있나니!"
"흘흘. 이 바닥에서 이날 이때껏 이 짓으로 연명하는 것도 다 입 무거운 것 하나 아니겠습니까요. 다만 약조를 지키란 말씀입죠. 흘흘."
흉터의 사내는 긴장하는 빛이 없이 능글맞게 웃었다.
"다시 한 번 말하노니. 인원은 둘, 약조된 시각은 첫 번째 수뢰의 폭음이 울릴 때, 아 반드시 이 점은 유념해야 하네. 첫 번째 폭음이 울리고 주위의 관심이 흩어졌을 때 일을 치르게."
"만약 수뢰가 터지지 아니하면?"
"우리 쪽에서 폭약이 터질 걸세. 만약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면 일은 없었던 일이네."
"알겠습니다요. 방포 후 예정대로 주막거리 쪽으로 뛰면 되겠습지요?"
"그래 구경꾼들의 혼란을 틈타 무리에 섞여 뛰게. 주막거리에 당도하면 가마 둘이 있을 것이니 그 속에 들면 되네."
"그리곤 함경도로 가라 이 말씀입죠?"
"그렇지"
"흘흘흘흘. 식은 죽 먹기입니다요. 염려 놓으십시오 나리."
흉터 있는 사내가 마루에서 일어났다.
"소인은 이만, 내일을 위해 좋은 꿈이나 꾸십시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를 까딱하고는 너덜너덜해진 폐가의 사립문을 밀고 사내가 나갔다.
"저 자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방안에서 김병학의 집사 안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염려 말게. 내가 누군가. 잘 될 게야."
가는 듯 매운 소리. 검귀 김기였다.
"천하의 김기를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네만… 그래도 이 일은…."
"자네나 나나 시키는 일만 하면 되네. 머릿속에 생각 따윈 넣지 말게나."
김기의 말에 안기주도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허물어진 방 벽을 통해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빠져 나왔다. 말은 그리했어도 김기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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