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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습니다. 살다 보니 이렇게 기쁜 때도 있습니다. 몸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후배가 강의하는 건물 귀퉁이에서 초조하게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에 담배를 물었습니다. 제가 후배를 향해 활짝 웃었습니다. 후배가 그제야 제게로 뛰어옵니다. 저를 덥석 껴안습니다. "형님, 고생했습니다"란 말을 되풀이합니다.

지난 10월 19일 저녁 8시30분이었습니다. 저는 부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4층 교육관에서 '시민기자와의 대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제게는 아주 각별한 강의였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심하게 말을 더듬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늘 불안했습니다. 대중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입니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시민기자로서 경험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면 돼요."

▲ 강의 모습.
ⓒ 부산민언련
첫 번째 강의, 모의 연습만 수십 번

저는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출퇴근 버스를 탈 때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희우라고 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이어지는 말, "여러분들의 따뜻한 시선이 없었으면 이번 강의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마지막 말도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저는 지금 아주 편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습하는 과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가족과 직원들 앞에서 수십 번도 넘게 모의 강의를 했습니다. 한 번 모의 강의하는 데 1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모의 강의를 많이 했으면 종아리에 알이 다 배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발전이 없는 거였습니다. 보름 가까이 연습했는데도 매양 그대로였습니다. 아내와 직원들의 지적은 한결같았습니다. 표정이 굳어있고, 부자연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원고를 안 보고 강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횡설수설이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비록 수강생들로부터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말을 들어도 원고를 읽는 것으로 강의를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강의하는 날이 왔습니다. 후배인 김 계장이 부산까지 동행했습니다. 후배도 불안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제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산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갈치찌개였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장날만 되면 갈치를 사오시곤 하셨습니다. 막걸리를 거나하게 드시고 허리춤에 갈치를 꿰찬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는 갈치찌개를 맛있게 끓였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밥상에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우며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생생했습니다. 아하, 바로 이거다. 이것으로 인사말을 대신하자. 저는 원고에 급히 메모를 했습니다.

▲ 제가 강의하는 모습입니다.
ⓒ 부산민언련
준비해 간 원고 도움없이 술술 강의

저는 강의실에 들어섰습니다. 후배가 힘내라며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후배는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본다며 강의실을 나갔습니다. 갑자기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저는 사회자의 안내로 강단에 섰습니다. 사회자가 제 소개를 합니다. 저는 아랫배에 힘을 주었습니다. 제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어, 그런데 이상합니다. 원고를 보지 않았는데도 인사말이 입에서 술술 나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는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서 제 경험담을 얘기했습니다. 시민기자가 되는 절차도 설명했습니다. 시민기자가 돼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면 소정의 원고료도 받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중간 중간에 저만의 비밀도 털어놨습니다. 제가 글쓰는 병에 걸려서 작년에 어금니 세 개를 잃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놀랍니다. 짓궂게도 수강생 중 한 분이 제게 질문을 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원고료 가지고 어금니를 해 넣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저는 조금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한바탕 웃습니다.

저는 시민기자의 글쓰기도 강의했습니다. 노트에 받아 쓰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정말 잠깐 강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간 15분이 지났습니다. 저는 서둘러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수강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년의 남자 분께서 질문을 했습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님과 제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박 기자님은 스스로 자신을 문단에 등단도 못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절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분들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박 기자님께 큰 박수를 보내줍시다."

두 번째 질문자는 여성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보면서 활짝 웃었습니다. 자기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가슴께로 두 손을 가져가더니 두 손을 활짝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아, 저는 지금도 그분이 한 말이며 행동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은 강의 중 가장 감명 깊었습니다. 박 기자님, 고맙습니다. 여러분, 박 기자님께 힘찬 박수를 보냅시다."

저는 더 이상 질문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눈시울은 이미 뜨거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깊은 감회에 젖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강의입니다. 말 더듬는 게 다시 도질까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말을 더듬지 않았습니다. 원고도 보지 않고 강의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는 처음 강의를 했습니다. 서툴고 미흡한 강의였습니다. 하지만 용기 하나로 버텼습니다. 여러분들의 애정 어린 눈길이 없었다면 저는 끝까지 강의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강의 시간 내내 제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기분이 참 좋습니다. 다시 한번 수강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수강생 여러분, 즐거운 휴일 보내십시오.

덧붙이는 글 | 저를 격려하기 위해 일부러 강의실까지 찾아주신 정수권 시민기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처음 뵈었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이 원한다면 강의 내용을 <오마이뉴스>에 전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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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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