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이 황금빛으로 부풀대로 부푼 가을풍경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쌀값 하락과 외국 농산물 수입으로 농민들의 마음에 큰 주름들이 잡혀있는 농촌의 실상을 생각하면 아름답다고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네 삶에서의 너른 들판의 가을풍경은 ‘그래도 살아야제’ 하는 마음이 들기에 충분하다.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농촌에 사는 입장에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하루 종일 들일을 하고 나락을 말리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며 가을축제를 간다는 것은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해오는 일이었다.
물론 그저 놀이삼아 가는 것이 아니라 일과 연관된 길이었기에 조금의 위안과 변명으로 마음의 짐을 덜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경상북도 중부에서 전라남도의 끝을 가는 일이란 상당한 시간과 혼자 가는 외로움을 감내해야 하는 인내도 요구했다.
경부고속도로와 구마고속도로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이어 달려 구불구불한 산굽이를 돌아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한 전라남도 순천의 낙안읍성.
누런 초가지붕이 푸근한 고향을 느끼게 하는 정경이 보이자 오랜 시간 동안 소요됐던 혼자만의 외로움 따위는 어느새 말끔히 잊혀졌다.
늘 고즈넉함으로 편안함을 주었던 낙안읍성의 분위기는 사또 아들의 잔치라도 있는 듯 전체가 들썩거렸다. 수문장까지 정문 앞에 떡 버티고 있는 모습이 정말 타임머신 속에서 금방 나온 듯 싶었다.
지난 10월 19일부터 오는 10월 24일까지 제12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를 하는 낙안읍성은 성안 사람들보다 구경 나온 성 밖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전라남도와 22개 시군이 주최하는 잔치니 준비한 행사와 볼거리, 먹을거리가 얼마나 많겠는가.
농수축산물로 만든 남도의 대표적인 음식이 모두 나온 행사인 만큼 행사장은 갖가지 음식냄새로 구경나온 사람들의 후각을 맘껏 자극했다.
각 시군별 음식부스에는 떡갈비, 전복불고기, 홍탁삼합, 세발낙지 등등 맛과 모양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음식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고 행사장 한켠에서는 남도음식을 직접 만들고 먹어보는 체험행사도 열렸다.
각종 산해진미를 모아 전시하는 기획전시관에는 그야말로 음식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음식들을 볼 수 있었는데 색색의 다식과 온갖 떡, 몸에 좋은 사찰음식 등등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은 것임을 증명해 주는 듯 했다.
특히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야채카빙전시였는데 수박과 호박, 박 등을 이용해 봉황과 용, 백조, 하트, 꽃 등을 조각하는 것으로 미적 감각이 뛰어난 예술품 자체였다.
다도와 다식만들기 시연, 수석전시, 소망등 만들기 등 체험행사와 남도요리 명장경연대회, 전국대학생 요리경연, 외국인 요리경연 등 경연행사와 각종 체험행사, 공연 문화행사가 이어진 ‘남도음식문화큰잔치’는 우리네 전통민속마을인 낙안읍성을 잘 활용한 남도색 짙은 향토축제로 손색이 없는 듯 했다.
늦은 저녁, 낙안읍성을 빠져나오면서 남도의 농특산품도 저렴하게 판매되는 특별코너에 들러 미역과 다시마, 쌀강정을 샀다. 어렵게 생산한 농민들과 어민들의 땀방울 냄새가 봉지를 뚫고 솔솔 나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