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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책임총리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 전념하고 열린우리당이 추천하는 책임 총리가 각료 임면권까지 갖고 국정 전반을 관장하는 그림을 여권이 그리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운 구상이다. <한겨레>의 보도다.
<경향신문>이 지난 21일 '민주대연정'을 보도한 지 사흘 만에 그와는 전혀 딴판인 구상이 보도됐다. 구상이 춤을 추는 건지, 보도가 춤을 추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국민은 어지럽다.
정리하자. <조선일보>의 김근태·정동영 장관 당 복귀 보도, <경향신문>의 '민주대연정' 보도, <한겨레>의 책임총리제 보도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구상이 모두 '내년 초'에 맞춰져 있다. 춤사위는 다르지만 스텝은 일정하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두 장관의 열린우리당 복귀 시점도 내년 1월이고, <경향신문>이 전한 '민주대연정' 구성 시점도 내년 초다. 그리고 <한겨레>가 보도한 책임총리제 시행 시점도 연말연초다.
여권은 왜 일정표를 '내년 초'에 맞추는 걸까? 지방선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여권이 지리멸렬한 상태로 지방선거를 맞으면 필패라는 판단에 따라 어떻게든 정치지형을 다시 짜려 하고 있고, 그 시점을 내년 초로 잡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여권의 지방선거 '올인' 전략은 이미 몇 달 전에 한차례 논란거리가 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7월 4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영주 경제정책수석으로부터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계획을 보고 받은 뒤 "콘셉트를 살려서 내년 지방선거 때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바 있다.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보는 7월 15일 지방순회 간담회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단체장 여야 비율을 2 대 8에서 6 대 4로 바꿔야 한다"고 했고, 영남권에서의 승리를 거론하면서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급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터 닦기' 뒤에 내년 초에 상량식을 치르겠다는 구상이다.
물론 여권의 최종 목표가 지방선거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지방선거는 말 그래도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올리는 작업이지 지붕을 얹는 작업은 아니다. 지붕을 얹는 작업은 '차기'를 판가름하는 2007년에 치를 것이다.
지지율 바닥 여당, 내년초 정치 이벤트 고민중
그러기 위해선 지방선거에서 기초공사를 제대로 해놔야 한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사업'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하는 여권의 입장에서 김 특보 말대로 지방단체장 비율을 6 대 4로 바꾸는 건 절박한 과제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철학에 성과를 보탬으로써 '차기'를 끌어내는 재료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열린우리당이나 대통령의 지지율 모두 바닥을 기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방선거여서 고전이 예상되는 마당에 지지율마저 바닥을 기고 있으니 6 대 4는 고사하고 2 대 8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정치이벤트는 그래서 필요하다.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지지율에 회생의 숨결을 불어넣기가 힘들다. 링거가 아니라 심폐소생술이 절실하다.
그럼 '민주대연정'이나 '책임총리제'는 심장 박동을 되살릴 수 있을까? 청와대가 '민주대연정'은 검토한 바 없다고 하니 일단 제쳐두자.
<한겨레>는 여권이 책임총리 후보로 이해찬 현 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역대에 난다 긴다 하는 총리가 많았지만 이해찬 총리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라고 노 대통령은 생각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이해찬 총리가 책임 총리로 위상을 굳건히 한다 해도 한계는 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나 민주대연정과 비교해 정치 이벤트 효과가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새로움'의 요소가 적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뭘까? <한겨레> 보도대로라면 여권은 3각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해찬 총리가 내정을 다그치면서 '실적'을 쌓고, 노 대통령이 외교·안보 분야에서 '소득'을 챙기면, 당에 복귀한 김근태·정동영 장관이 이를 지지율 만회카드로 활용하는 구도다.
최근 들어 남북정상회담설이 끊이지 않는 배경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보, 김재홍 열린우리당 대표 특보 등이 모두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물론 그때마다 청와대가 즉각 극력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은 청와대의 이런 '강한 부정'을 더 이상하게 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그 시점이 지방선거 전이라 해서 여권이 알토란같은 정치 소득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4·13총선 사흘 전에 발표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했던 국민의 정부와 민주당이 부메랑을 맞았던 전례가 시사하는 바는 아직도 크다.
2006년엔 '전열 정비' 카드, 2007년엔 어떤 카드가 제시될까?
사정이 이러하니 여권의 카드가 순차적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초에 뽑게 될 카드는 '전열 정비' 차원의 카드로 제한하고 본전인 2007년을 대비한 카드를 별도로 모색하는 접근법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겨레>가 보도한 '책임 총리제' 방안이 어떤 성격을 띠는지는 보다 분명해진다. 그건 '밑밥'이지 '미끼'는 아니다.
2007년 본전을 대비한 카드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아니, 아직 카드가 마련되지도 않았을 수 있다. 남아있는 시간만큼 상황의 유동성도 크다.
최근 들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정가에서는 정계 복귀설이 조금씩 진지성을 띠고 있다.
정가의 이런 예측이 현실화될 경우 한나라당의 내부 사정은 복잡해진다. 박근혜-이명박 양자구도에 균열이 올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이 박근혜-이명박-이회창 3자구도가 될지, 아니면 이회창 전 총재의 캐스팅 보트권 행사로 박근혜-이명박 양자구도가 일극구도로 재편될지는 미지수다.
여권의 입장에선 그것이 어떤 모양새로 연출되건 한나라당의 분열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주의 관찰대상인 것만은 분명하며, 그에 따라 손에 쥘 카드를 조절할 것이다. 한나라당 분열상이 97년 신한국당과 같은 복수 후보로 나타나느냐, 아니면 2002년 민주당과 같은 '사보타지' 형국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여권의 '차기 창출 카드'는 달라질 것이다.
이런 가능성은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를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정계 복귀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지금의 정가는 흐르는 강물과 같다. 댐을 쌓기엔 아직 수량이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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