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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반의 준비는 되었느냐?”

김병학의 표정에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김기와 안기주가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일을 챙겼다.

“예 저희 쪽 준비는 끝났사옵니다.”

김기가 짧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이 이렇게 간결하다면 그의 몫은 완벽히 끝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놈들 뒤끝은 없는 놈들이렸다?”
“본시 일매무새가 깔끔하고 뒤끝 없기로 정평이 있는 놈이라 하옵니다만, 뒤끝이 없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 되겠지요.”
“흠… 그래야겠지.”

김기의 말에 김병학이 희미하게 웃었다. 김기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점은 오히려 김병학이 당부하고 싶은 말이었으나 이미 김기가 알아서 조처해 놓은 것이었다. 수하들이 다 안기주나 김기만 같았다면 천하라도 손에 넣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불안한 가운데 잠깐 얼굴을 펼 수 있었다.

“이런 일이야 네가 더 잘 할 터이니 어련 알아서 하겠지.”

“염려 놓으십시오. 대감. 그럴 리 없겠습니다만,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저희를 의심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거사현장의 일선엔 제 수하들을 놓지 아니한 것이기도 하옵고요. 설사 천 번을 양보해 일이 저희 목숨을 내놓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대감께까지 화가 미치는 일이 없도록 해 놓았습니다. 일이 잘 되든, 잘못되든 세상에는 천주교인들이 저지른 일로 퍼질 것이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한강변에서의 일이 성공하면 너는 즉시 수하들을 모아놓고 여기서 기다리거라. 거사 후엔 내가 제일 먼저 입궐할 것인즉 그때 날 배행하여야 하느니.”

“예.”

“우리 쪽 장졸이 얼마나 된다 하였지?”

“제 수하들로만은 채 30을 넘지 못하옵니다. 허나 대감의 집안에서 모아준 장정과 뜨내기 왈패를 합하면 90남짓 하옵니다.”

“90이라… 그 자들은 믿을 만한가?”

“적어도 제 수하들만큼은 믿을 만합니다. 아직 내일 있을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설사 발설한다 해도 끝까지 따라올 자들입니다.”

“그래 그래. 어찌 될지 모르니 너와 안기주를 외엔 절대 함구하고 있어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감.”

김기가 짧게 대답했다.

“하온대 저희만 궁궐로 들어가옵니까?”

“우포장과 우포청 나졸들이 들어가게 될 걸세. 허나 포청 나졸이야 머릿수로야 채 50을 넘지 않을 것이고 우포장 역시 지금 상황을 모르고 있으니 결국 주상의 주변을 에워쌀 이는 자네의 장졸 뿐이야.”

“문제는… 궁궐 내의 수직군사들이나 무예별감들이 호락호락하게….”

김기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궁궐 안쪽은 조성하 대감이 알아서 할 걸세. 아직 대비마마도 있는 상황이고. 그리고 조영하 대감이 개성으로 떠났고 조대감이 자기 사람이라 떵떵거렸던 이규철이 총융사로 올라 있으니 어느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려 하지는 않을 게야. 더구나 대원군까지 제거된 뒤라면….”

김병학이 말을 하다 흠칫 주변을 훑었다. 안기주와 김기도 주변을 둘러봤다. 지난 번 영의정 김병학의 사저에까지 간자가 들었던 기억이 습관처럼 움츠러들게 한 까닭이었다.

“대원군의 피살이라는 초유의 국난에 영의정의 주도로 사태 수습이 이루어지는 것이야 의당한 일이니 의금부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어린 주상의 뒤엔 여전히 대왕대비가 있으니 조성하가 잘만 움직여주면….”

“그리만 되면 더 이상의 피를 보지 않고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습죠. 허나 아직 시기가 이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김병학의 말을 안기주가 가로 막았다. 그리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대원군의 제거로 가장 득을 보는 자로 누구를 지목하겠사옵니까? 설사 성공했다 하더라도 복권한 대비마마가 두 마음을 품었을 경우엔 어찌하겠사옵니까? 그도 아니면 대가리가 없어진 틈을 타 주상이 친정을 선포하거나 일부 신료들의 작은 저항에도 전국의 유림들이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결국 병권을 직접 장악하기 이전에 판도가 전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갈 우려도 있다는 말씀입지요.”

“끄응….”

김병학이 된 신음을 뱉었다. 그 또한 모르고 행동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날의 모의가 대원군의 귀에 들어갔다면 분명 처절한 보복이 있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벌이는 최악의 수일뿐이었다.

“그러기에 그날 간자의 침입을 허용한 네 놈들 탓이 아니겠느냐!”

무안해진 김병학이 김기와 안기주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면목이 없습니다. 하오나 소인이 이런 말씀을 여쭙는 것은 아직 재고해볼 만한 여유가 있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지금 조 대감 댁에 들러 오는 길이옵니다.”

김병학의 성격을 아는 안기주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흠… 그래 그날 우리집에 들었던 자가 누구인지 알아냈다더냐?”

“아직 알아낸 것은 아니오나 운현궁이나 의금부나 너무도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 하였사옵니다. 어쩌면… 그 간자는 운현궁에서 보낸 자가 아닐 수도 있다 하였습니다.”

“무에야? 그러면… 누가, 왜?”

김병학이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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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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