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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이 차와 간단한 다과를 내어 놓는 사이, 차예량은 촛불에 일렁이는 객잔주인의 얼굴을 슬쩍 관찰해 보았다. 중국식 복색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백발이 성성한 객잔주인의 얼굴에는 한줄기 깊은 칼자국이 나 있었고, 무릎 앞에는 정성껏 닦아서 넣어둔 칼을 놓아두고 있었다.
“기다리시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셨나?”
객잔주인의 질문은 뜻밖인지라 차예량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간단히 얼버무리려 했다.
“그저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봤을 뿐입니다.”
객잔주인 역시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차 한 모금을 맛본 뒤 차예량의 말꼬리를 잡아채었다.
“그러니까 그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객잔주인의 독특하고도 묘한 어조가 차예량의 심기를 슬그머니 건드렸다.
“그런 것을 자세히 말해줘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이오?”
객잔주인은 목에서 가래가 끓는 소리를 내며 껄껄 웃었다. 차예량은 더욱 기분이 나빠져 여차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분 상한 표정 지을 거 없다! 난 지금 그대의 결정을 존중해 주려 이러는 것이다. 일부러 방서방을 시켜 예정일보다 하루 일찍 이곳에 오게 한 것을 아는가?”
차예량은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게요?”
그러고 보니 나루터에 청의 배가 드나들 수 있으니 심양으로 떠날 날을 하루 앞당기자고 방서방이 재촉한 일이 차예량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장판수와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 심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차예량은 벌떡 일어나 객잔 주인에게 소리쳤다.
“대관절 넌 무엇 하는 자이기에 나와 장초관의 약조까지 안단 말이냐!”
“조용히 앉아라.”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계화야, 그만 나가자!”
하지만 어느새 차예량의 뒤에는 하인과 방서방이 위압적인 태도로 서 있었다.
“흥분만 하지 말고 거기 앉아서 얘기나 더 들어보시오. 결코 차선달을 해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외다.”
방서방의 말에 차예량은 기가 막혔지만 당장 힘으로 싸워 나갈 도리는 없어 보였다. 더구나 객잔주인은 칼까지 앞에 두고 있는 형국이었다. 차예량은 자리에 앉아 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결연히 말했다.
“그래, 내가 어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난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쪽의 생각은 어떠한지 알고 싶을 따름이다.”
차예량은 잠시 차로 입술을 축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일단 심양으로 가서 생각해볼 참이오.”
객잔주인의 입가에 노골적인 비웃음이 묻어 나왔다.
“그게 다란 말인가?”
차예량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사실이 그러하다는 점에 순순히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당신은 심양으로 갈 수 없다. 왜 그런지 내 말을 들어 보겠는가?”
“맘대로 하시오. 하지만 날 이곳에 잡아두거나 해한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오.”
차예량은 그 속셈을 알 수 없는 객잔주인이 괘씸하다고 여겨질 뿐이었다.
“심양에 있는 조선 사람들을 데려오는 일은 분명 좋은 뜻이다. 허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심양으로 가서 뭘 어찌하겠단 말인가? 기껏해야 심양에서 이리저리 떠돌다가 비렁뱅이가 되기 딱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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