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Genocide)란 그리스어 genos(인종)와 라틴어 cide(살해)를 합해 만든 말로 종족 내에서 벌어지는 집단 학살을 의미한다. 제노사이드는 각 희생자가 살해를 유발하는 행동을 했든 안 했든 간에, 단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살해되는 게 특징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범죄, 전쟁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제노사이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숨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졌던 유대인 대학살, 일본인들의 잔혹행위, 코소보 사태, 중국의 문화혁명, 이라크 전, 6·25에서 광주사태까지 수많은 대량학살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광기이다.
어떤 일련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노약자를 포함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제어되지 않고 판단하지 못하는 개인의 이성을 마비시킨 상태가 제노사이드를 만들어낸다. 집단이 아니 개인의 정의가 살아 있다면 제노사이드의 비극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니퍼는 야생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연구 프로젝트를 맡아 탄자니아로 떠난다.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중국 대학 교수였던 친부모는 문화혁명 때 탄압받다 죽고 입양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가족처럼 사랑하는 침팬지 집단을 희생으로 삼는 제노사이드 공포가 서서히 다가온다.
제노사이드는 동물 세계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벌목으로 인해 생활터전을 위협 받은 수적으로 우세한 튀틀덤 집단이, 제니퍼가 수화를 가르친 튀틀디 집단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침팬지의 제노사이드는 새끼들까지 포함한 모든 수컷들의 몰살을 의미한다. 암컷들에겐 목숨을 유지하는 대신 성적 학대와 집단에서 최하위 계급으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제니퍼가 다니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다니가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감성을 지녔다는 데 있다. 그만큼 그들의 정은 깊었다. 제니퍼는 갈등한다. 튀틀디 집단을 구하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악이 아닌 튀틀덤 집단을 적으로 규정해야 하는 현실과 자신조차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두려워 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권력자에게 분노하지만 그녀는 나약하다.
제노사이드는 또 다른 진화를 의미하며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자연은 종의 개체수를 조절한다는 논리에 잠시, 자신의 나약함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혁명 당시 광기 어린 홍위병 앞에서 폭력의 부당성을 부르짖다 축출 당한 어머니의 망령이 그녀 속에 살아 움직인다.
제니퍼는 다니와 그의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순수한 열정으로 숲을 향한다. 그러나 그녀는 소크라테스가 죽고 세네카가 죽었듯 그렇게 권력 앞에 죽어갔다. 철학자가 죽은 뒤에도 세상은 권력자 차지였던 것처럼, 튀틀덤 집단에 의해 다니의 가족 역시 하나 둘 처참하게 사라졌다. 다니는 공포에 떨며 이미 죽어버린 제니퍼를 찾으며 울부짖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세네카의 초연한 죽음을 기억하면서 정의로움을 생각하는 것처럼, 제니퍼의 죽음은 광기 어린 폭력에 맞선 휴머니즘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한 일은 노트와 펜을 준비하는 거였다. 신행동주의, 인류학계보, 네클로필리아, 사회생물학, 사회생태주의, 심층생태주의, 코소보 사태 발발과 진행과정, 르완다 내전 따위 평소에 궁금했던,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내용들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한 일은 중국, 아프리카, 중동, 미국 등 동서양을 오가는 다양한 소재를 다룬 두 작가의 역량에 놀라고 감동하는 일이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지식을 전하면서도 소설적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지적인 충만감 속에 주인공과 함께 사랑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에필로그를 읽으며 쏟아내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도서제목 : 다니
저자 : 김용규, 김성규
출판사 : 지안
값 : 11,000원
김용규 또 다른 책 <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1,2> <알도와 떠도는 사원>
<영화관 옆 철학카페>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