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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를 신청한 4개 후보지역의 주민투표가 11월 2일로 다가온 가운데 투표를 둘러싼 관권개입, 불법행위 의혹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내 찬반대립도 격해져 투표 이후 후유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상황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정확한 현지 분위기와 지역민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군산을 시작으로 경주 포항 영덕 등 4개 후보지역을 차례로 순회하는 르포취재를 기획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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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찾은 군산은 옅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빠져 나와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방사물폐기물처분장(이하 방폐장) 유치를 찬성하는 펼침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군산은 경북 경주와 포항, 영덕과 함께 방폐장 유치를 신청한 지역이다.
"방폐장 유치, 경주는 청와대 힘으로! 군산은 시민의 힘으로!"
"(방폐장 유치) 반대단체들은 군산의 막가파인가?"
언뜻 눈에 들어오는 펼침막의 개수로 치자면 방폐장 유치 찬성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보인다.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도 유치찬성단체나 유치반대단체도 "군산 시민 대다수가 방폐장 유치에 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군산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유치를 둘러싼 찬반 대립은 11월 2일로 예정된 주민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격해지고 있다.
방폐장 유치에 따른 안전성과 경제성에 대한 이성적 논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찬반단체 간에 고소고발이 잇따르고 심지어 벌써부터 '책임론'이 등장하는 등 주민투표 이후에도 반목과 분열은 사그라지지 않을 태세다.
25일 현재 군산에서 방폐장 유치와 관련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다섯 가지. ▲공무원의 선거개입 ▲지역감정 유발 ▲반대단체 공보물 사진 논쟁 ▲직도 미군 사격장 ▲외부세력 개입논쟁 등이다.
"관권과 금권이 난무하는 단군 이래 최대 부정선거"
이 중 가장 큰 쟁점은 공무원의 선거 개입에 따른 부정선거 논란.
군산 핵폐기장유치반대 범시민대책위(대책위)는 이번 주민투표에 대해 "관권과 금권이 난무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선거"라며 이미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승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김종섭 대책위 상황실장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대리신고·대리접수·대리투표를 하고 있는 상황에 망연자실할 뿐"이라고 허탈함을 나타냈다. 대책위는 24일까지 공무원이 개입한 40건(부재자투표 신고과정 20건, 부재자투표 과정 20건)의 부정투표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대책위의 이런 입장에 대해 유치찬성단체인 범전북 국책사업유치 추진위(국추협)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전형적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편말수 국추협 홍보국장은 "불법사항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데 투표용지까지 탈취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또 군산시 국책사업추진단 관계자는 "잘 모르는 사안이어서 답변할 수 없다"고 얼버무렸다. 이 관계자는 "다만 군산시는 원활한 주민투표를 위해 올바른 정보만을 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올바른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라는 군산시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책위가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군산시는 '추진전략 보고'라는 문건을 통해 '투표자 중 찬성율 90% 이상 목표총력 - 5만8680명'으로 목표를 정해놓고 소속 공무원들을 통별로 배치해놓고 있다.
또한 13억원이라는 예산을 '국책사업유치추진비' 명목으로 확보, 찬성단체에 지원하고 있다. 국추협 관계자는 "13억 중 8억 정도가 몇 가지 명목으로 유치 찬성단체에 지원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관이 찬성운동을 위해 공무원은 물론 돈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감정 유발은 유치찬성단체의 초조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경주나 포항, 영덕 등 경상도 유치 신청지역의 움직임에 극도로 민감해 있는 것이다.
국추협 관계자들은 ▲월성 원자력 건설지원금 697억원 발표 ▲11월 22일 한미 정상회담 경주 개최 발표 ▲군산 앞바다 직도 사격장 미군대체사격장 검토 등 일련의 흐름은 "청와대가 나서서 경주를 도와주려 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 관계자들은 "지역감정은 초반부터 거론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경쟁을 하다 보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만 일부 지역언론이 이를 먼저 조장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유치 실패하면 군산을 떠나든지 단체를 해체하라"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방폐장 유치 찬반으로 갈렸던 주민들의 분열이 주민투표 이후에도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찬성단체인 국추협 관계자들은 서슴없이 "군산으로 유치되면 묵과하겠지만 만약 유치에 실패하면 반대단체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유치에 실패하면 군산을 떠나든지 단체를 해체하든지 선택하라"며 반대단체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반대단체인 대책위 관계자들은 "지역 공동체의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 나서야할 관이 이성을 잃은 결과"라고 꼬집었다. 김종섭 상황실장은 "군산시가 방폐장 유치에 모든 것을 걸고 너무 깊숙이 개입했다"며 "중립을 지키기는 커녕 관권을 동원해 주민갈등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한편 찬반 양측 간의 격렬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분위기는 평온한 분위기다. 유치 찬성이 대세라는 점과 이에 따라 반대 입장을 지닌 주민들이 함구하고 있기 때문.
양태중(49)씨는 "군산시민 중 열이면 아홉은 유치에 찬성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십년 경제 낙후 속에 살아와서 '방폐장이라도 유치하면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양씨는 찬반단체와 주민간의 분열과 반목을 염려했다. 양씨는 "이번에 보니까 부안군민들이 왜 둘로 나눠져 다퉜는지 이해됐다"며 "한 지역에 사는 만큼 서로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규환(50)씨는 "방폐장이 유치되면 3천억원이 들어온다지만 그 돈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건 아니다"며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이씨는 "특히 어민들과 농민들의 피해가 클 것"이라며 "그 분들의 피해를 정부가 보상해주는 것도 아니고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씨는 "다들 마음이 들떠있는 건 알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해야 한다"며 "주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군산의 미래를 위해 서로 힘을 모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20년간 표류해 온 정부의 방폐장 위치 선정. 정부는 정책적 결단 대신 주민의 의사를 묻는 '민주적 방식'을 택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주민들은 분열하고 있다.
11월 2일 주민투표가 끝나도 주민들 간의 갈등과 반목을 정부가 해소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방폐장 선정을 주민들에게 떠넘겼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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