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생강차의 진한 갈색이 매콤한 향으로 젖어듭니다. 쌉쌀한 매운맛이 화끈거리며 목구멍으로 넘어갑니다. 뜨거울 법도 한데 은숙이네 할머니도 영미 어머니도 또 현서 엄마도 그저 꿀꺽꿀꺽 잘도 넘깁니다. 엄마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돌배기 현서는 어쨌거나 한 모금 얻어 마셔야겠는지 제 엄마 손에 들린 컵을 빼앗으려 필사적입니다.

“생강차가 아주 제대로 다려졌네. 목구멍이 화끈거리는 게 아주 시원하고 좋네.”
“그려. 그저 감기엔 이 생강차 따라갈 게 없지. 왜 복희엄마 감기 걸렸어?”

“복희엄마야 환절기 땐 아예 감기 달고 사는 걸 뭐.”
“아줌마. 감기가 아니라 알레르기 비염이라니까요.”

“어쨌거나 만날 코 훌쩍거리는 건 감기나 마찬가지지 뭐.”
“우리 신랑도 알레르기 비염인데 그거 아주 괴로운가 봐요. 머리도 많이 아프고.”

영미 어머니는 콩 타작에 매우 열심입니다. 막대기로 콩대를 두들겨대니 콩깍지에서 튀어 나온 콩이 불꽃처럼 하늘로 튕겨 오릅니다. 늦은 오후. 은숙이 할머니와 현서네 엄마가 콩 타작에 바쁜 영미 어머니를 도와 밖으로 튀어 나간 콩을 한 개 한 개 정성스럽게 주워 모으고 있습니다. 마침 진하게 다려진 생강차 몇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요즘 앞집 영미 어머니는 매우 바쁩니다. 깨를 털고 콩 타작을 하고 짬짬이 미처 못 딴 고추도 따고…. 뭐라도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 얼굴을 내밀면 한사코 도리질을 하십니다. 그저 구수하게 커피나 한 잔 타달라 하십니다. 이웃의 정이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느냐며 뭐라도 도와 드린다고 고집을 부려보지만 번번이 커피 한 잔으로 입 흉내만 내고 맙니다.

은숙이 할머니나 현서 엄마도 피차일반입니다. 은숙이 할머니는 누런 호박 몇 덩이를 그저 얻은 것이 고맙고, 현서 엄마는 고춧가루 한 되박을 그저 얻은 것에 고마워 영미 어머니의 바쁜 일손이라도 도와주려 늘 마음을 다하지만 역시나 마음뿐입니다. 다만 혼자 바쁜 영미 어머니 곁에서 조곤조곤 말 벗이나 해주는 게 고작입니다.

“옛날 농사 짓던 거에 비하면 지금 농사는 일도 아니야. 논농사는 기계가 다하고 나야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저것들 거두는 일인데. 그깟 거 얼마나 된다고. 거들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외려 귀찮아. 이렇게 옆에서 말 벗이라도 해주면 나 거들어 주는 거야.”
“아줌마는 손바닥도 무지 크네. 저게 어디 손바닥만한 텃밭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남 다 주고나면 아줌마는 뭐 먹어요?”

“내 손바닥 큰 거 이제 알았어? 그리고 뭐든 혼자 먹으면 맛없어. 작게 먹어 감질나더라도 나누어 먹어야 맛있는 거야. 참 복희네 된장 다 떨어졌을 텐데. 저녁에 된장 통 가져와. 현서네는 김치 있어? 없으면 가져다 먹고. 할머니는 뭐 아쉬운 거 없어요. 뭐든 어려워 말고 가져다 드세요.”
“아줌마. 그러다 아줌마네 살림 다 거덜 나겠어요.”

“우리 살림 거덜 나면 복희네 현서네 할머니네 두루두루 다니면서 뺏어먹고 살지 뭐.”
“맞아 그러면 되겠네.”

영미 어머니는 쉬지 않고 콩대를 두드리고 다른 이들은 튀어 나간 콩을 줍느라 역시 손놀림이 바쁘면서도 주거니 받거니 말장단에 하얀 웃음꽃이 파란 가을 하늘로 피어오릅니다. 높고 파란 하늘은 웃음꽃도 튀어 오른 콩도 모두 다 보듬을 듯이 넉넉한 품을 활짝 벌린 채 청명한 미소로 아줌마들의 수다를 재미있어 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계절은 넉넉함을 품고 있습니다. 이웃들은 땀과 정성을 나누려 합니다. 씨를 뿌렸던 봄부터 땀을 흘렸던 여름까지 또 거두어들인 가을까지 그네들의 모든 것을 나누려 합니다. 누런 호박 몇 덩이가 고춧가루 한 되박이 또 구수한 된장이 그들의 땀이고 정성이기에 가슴이 뜨겁습니다. 넉넉함과 나눔과 감사함이 함께하는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 김정혜

ⓒ 김정혜

ⓒ 김정혜

ⓒ 김정혜

ⓒ 김정혜

ⓒ 김정혜

ⓒ 김정혜

ⓒ 김정혜

ⓒ 김정혜

ⓒ 김정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