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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블라나 박물관 전경
ⓒ 김정은
메블라나 박물관

콘야(Konya)의 옛 이름은 바울의 제 1, 2차 선교여행지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이고니온'이다. 지정학적으로 고대 그리스 도시인 에페소를 가기위한 길목에 위치한데다, 비시디아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비옥해진 평야에서는 해마다 터키 전체 국민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빵을 만드는 밀이 생산되는 풍요의 땅이다. 이러한 풍요로움 때문에 이 지역은 예로부터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로 번영을 누린 적도 있었다.

천혜의 풍요로움이라…, 먹고사는데 별 걱정이 없다보면 인간은 두 가지 형태로 변화하는 것 같다. 점점 더 물질적인 것에 탐닉하는 사람과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면에 집중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너무 물질적인 것에 탐닉하는 사람이 많으면 고대 로마제국처럼 멸망의 수순을 밟게 되지만 정신적인 면에 집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상 내지는 종교의 본산지가 되기도 한다.

▲ 메블라나 박물관에 모셔져있는 여러개의 관들. 제랄레딘 루우미의 관을비롯한 가족들의 관이다.
ⓒ 김정은
콘야의 경우는 두 번째 경우로 지극히 터키적인 이슬람 수피교단 중의 하나인 메블라나 교단의 본산지이다. 지금도 터키의 무슬림들은 메카로 성지순례를 갈 때 꼭 콘야를 거쳐 메블라나의 무덤이 있는 이곳 메블라나 박물관을 참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직접 찾아간 메블라나 박물관은 입구부터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겉보기에는 이곳도 여느 모스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모스크와는 달리 여러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그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은 시신을 담아놓은 여러 구의 관들이다. 이 관들은 메블라나교단의 창시자 제랄레딘 루우미를 비롯한 그 가족들의 시신들인데 특히 중앙의 제랄레딘 루우미의 관 앞에는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몰려와 하나같이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평상시와는 달라 보이는 터키인들의 경건함과 진지함을 목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수많은 사람을 경건하게 만든 주인공, 제랄레딘 루우미라는 사람의 생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생애를 살다 간 사람이었기에 사후에도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일까?

제랄레딘 루우미는 메블라나 교단의 창시자이기에 앞서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1207년 9월 30일 현재의 아프카니스탄에 있는 발흐(Balkh)에서 태어난 그는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현재의 콘야에서 정착하게 되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다가 시를 쓰면서 신비주의에 심취한 결과, 메블라나 교단을 창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 세마댄스를 추는 세마젠을 표현한 모형
ⓒ 김정은
메블라나의 철학 사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고의 밑바닥에는 항상 평민에 대한 애정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 사고가 깔려 있다. '신'이란 우주 안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존재이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을 받아들일 마음만 있다면 그 사람이 무신론자이든 무슬림이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 유일신 알라와 만나기 위해서는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하며, 금욕과 고행을 통한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머리에 지식만 있고 수련을 게을리 하는 학자들보다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하는 진실한 마음의 평민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왜 터키인들이 그를 '터키의 위대한 이슬람 신비주의 철학자이며 시인'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 세마댄스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들 . 위에 보이는 것이 터키피리 '네이'이다
ⓒ 김정은
세마댄스와 세마젠

메블라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세마 댄스와 세마젠들과 관련한 악기와 모형들이다. 세마(SEMA)댄스는 이것은 신비종교 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행하는 의식으로서 우주의 신과 융합하는 의식이다. 영적으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명상춤을 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세마젠의 세마댄스 공연은 보지 못하고 춤추는 모형과 네이라는 터키피리를 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갈색이나 흰색의 모자를 쓰고 흰색의 긴 치마와 흰색저고리를 입고 한 손은 위로 향하고, 또 한손은 아래로 향하여 치마가 힘껏 펴질 만큼 돌고 또 도는 모습의 모형을 보니 언젠가 TV에서 이 춤을 본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빨리 돌수록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이들은 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세마댄스를 추면서 궁극에는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아지경 속에서 과연 그들은 알라를 만날 수 있을까?

▲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가는 도로
ⓒ 김정은
세마댄스에 대한 강한 호기심만을 남긴 채 나는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밀밭을 지나 안탈리아 지방으로 가기 위해 타우로스 산맥을 넘고 있다.

타우로스 산맥을 경계로 이전의 고온건조했던 터키기후는 안탈리아 지방으로 오면서 지중해의 영향으로 인해 고온다습한 기후로 바뀐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여름 날씨로 되돌아간다고 하니 문득 이제까지 고온건조했던 터키기후가 그리워진다. 습기가 없으니 무더운 날씨에도 그다지 땀이 안나고 그늘 안에서는 비교적 시원해서 견딜만 했는데 이제 어떡하나 약간 걱정되었다. 문득 한 나라 안에서 기후대가 달라질 만큼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터키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타우로스 산맥 휴게소에서 효자손을 보다

▲ 휴게소 안에서 우연히 본 효자손
ⓒ 김정은
타우로스 산맥을 넘는 도중 잠깐 휴게소에 들러 이런저런 구경을 하니 흥미로운 물건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우리민족과 터키 민족은 생긴 모습과는 달리 기질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이곳 휴게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효자손'이었다.

효자손을 보자 지난번 터키의 목욕탕 하맘을 보면서 유일하게 때를 미는 민족은 우리나라와 터키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낀 묘한 기분을 또다시 느낄 수 있었다. 과연 터키인들도 우리나라 사람처럼 가려운 등을 긁기 위해 이 효자손을 사용할까? 상상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이곳 터키가 과일이 풍부하다는 사실은 이곳 과일 값보다 아이스크림 값이 더 비싸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뿐인가? 오렌지 하나를 즉석에서 짜주는 즉석 오렌지 주스 1컵 값이 터키 고유의 찰진 느낌의 아이스크림 '돈두루마'와 같거나 싸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찰진 터키아이스크림 돈두루마

돈두루마 아이스크림의 재료는 양, 염소 등의 젖과 난초의 뿌리가루 등인데 이들을 섞어서 밀가루 반죽을 하듯이 계속해서 반죽을 하면 어느새 아이스크림이 식은 찰떡같이 되어서 덩어리 전체가 잘 떨어지지도 않게 찰지게 된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의 맛은 첫맛은 찰지면서도 뒷맛은 부드러운 느낌만 남는 게 꽤 먹을 만하다.

▲ 돈두루마 아이스크림 장사의 유쾌한 쇼맨십
ⓒ 김정은
무엇보다도 돈두루마 아이스크림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바로 아이스크림 장사의 유쾌한 쇼맨십이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팔 때마다 아이스크림이 찰지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덩어리 채 들기도 하고 컵에 담은 아이스크림을 줬다 뺐다도 하는 쇼맨십을 일일이 펼쳐 보이며 좌중을 당황하게도 유쾌하게도 만드니 그 노력만 해도 양으로 볼 때 약간 비싸 보이는 즉석 아이스크림의 값이 상쇄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목격한 '효자손'과 즉석 오렌지 주스의 신선한 단맛, 그리고 돈두루마 아이스크림의 유쾌한 이벤트 때문에 어느덧 타우로스 산맥을 넘는 지리함은 날아가 버린 채 또다른 목적지인 안탈리아의 짜증날 법한 고온 다습한 기후조차 은근히 기다려진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지중해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안탈리아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터키7박8일여행기 12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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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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