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꽃을 삼켜 버린 태양이 붉은 코스모스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도 이렇듯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커다랗고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지닌 태양조차도 조그마한 코스모스 꽃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태양과 코스모스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인 셈입니다. 태양이 코스모스를 받아들이듯 코스모스도 태양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와 자신이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어 호접몽(胡蝶夢)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장자의 눈으로 보면 자신과 나비가 하나이듯 삶과 죽음도 하나입니다. 이 세상은 결국 무이당(無二堂)입니다. 우리 모두가 둘이 아닌 하나인 세계(집)인 셈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안의 노을 앞에 서면 사람도 태양과 하나가 됩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자연과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었을 때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가 하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원래 하나인 존재들이 서로 혹은 따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억새꽃 하나로 태양을 가리던 억새도 이제 태양이 만들어낸 또 다른 세상에게 그들의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내어주고 있습니다. 양보입니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한 양보입니다. 억새를 삼킨 태양은 내일 아침이면 억새를 고스란히 내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바람은 억새잎을 조용히 달래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입니다. 내 것만 챙기고 내 것만 보살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생각일 따름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어길 수가 있습니까. 인간은 단지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하는 것입니다. 작은 거부도 인간의 교만일 따름입니다.
태양을 삼키는 아버지 같은 바다를 보세요. 태양을 안아주는 어머니 같은 대지를 보세요. 저 모습에서 인간의 자만심을 볼 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볼 수가 없습니다. 인간도 이렇듯 바다를 닮고 대지를 닮아야 합니다. 이런 대지와 바다와 같은 넓고 깊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우쭐하거나 거만해지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일 따름입니다. 조그마한 인간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자만과 거만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자연이 없는 인간은 절대로 자연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원래 하나인 상태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부안의 노을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부안의 노을이 그 만큼 우리를 압도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노을이 주는 위대함 앞에서 우리는 갈대와 같은 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강한 것처럼 행동해도 부안의 노을은 이미 우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져야 하고, 그래야 우리는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두 어 달밖에 남지 않은 계유년을 바다와 산과 대지가 하나를 이루고 있는 부안 노을 앞에서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