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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동안 감을 깎았다. 밤낮으로 깎았더니 손아귀가 뻑뻑하고 어깨뼈가 뻐근했다. 음악을 틀어 놓고 감을 깎기도 했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내 방식대로 ‘감 깎기 명상’을 해 보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깎아도 깎아도 남아 있는 감이 지겨워지기도 했다. 힘들긴 했어도 어쨌든 내가 견딜 만한 정도였다고 여겨진다.
감을 따 온 첫날에 분명 무른 감들을 다 가려내고 곶감 깎을 감을 따로 담아 뒀었는데 며칠 동안 깎다보니 그동안에 여러 개가 물러져서 무른 감 쪽으로 옮겨야 했다. 감 껍질은 따로 널어 말렸다. 어머니가 시루떡을 할 때 감 껍질을 말려 빻아가지고 콩고물이나 팥고물 대신 사용했던 기억이 나서 올해 나도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 감 껍질은 그것 말고도 잘 말려 두었다가 곶감을 손질해 분을 낼 때 상자에 함께 담아 두면 좋다.
감장대로 잘 따서 감꼭지가 달려 있는 감은 외줄에 매달았고 감꼭지가 없는 감은 대나무에 꿰어 가로 달았다. 너무 높은 곳에 달려 감장대가 닿지 않은 감들은 감나무를 마구 흔들어 땄는데 그런 감은 반은 깨졌고 반은 성했다. 깨진 것은 몇몇 홍시와 함께 감식초를 만들려고 따로 독에 담았다.
원래 꼭지가 없는 감은 채반지에 널려고 했는데 올해는 감을 워낙 많이 따서 채반지에 다 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뒷산에 가서 가느다란 대나무를 쪄다가 감 대롱을 만들어야 했다. 한쪽은 톱으로 반듯하게 자르고 다른 한쪽은 낫으로 비스듬히 삐쳐서 날카롭게 다듬었다.
어릴 적에 미끈거리는 깎은 감을 왼손에 쥐고 날카로운 감대를 찔러 넣다가 손을 찌른 적이 있어 조심조심 감을 꿰었다. 감 대롱을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감을 뚫으면 생감이 쪼개지지도 않고 손도 다치지 않는다.
역시 어릴 적 기억대로 새끼줄을 꼬아 감대를 끼워 넣을까 하다가 나일론 끈을 사다가 했다. 새끼줄을 꼬고 할 시간이 없어서 그랬는데 빨리 가려다 뒤 처진 꼴이 되고 말았다. 굵은 나일론 끈이 짚 새끼만큼은 신축성이 없다보니 감대를 대 여섯 개 꽂고 나니 더 이상 끈을 비틀어 틈새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어 노끈으로 감 대롱을 하나씩 엮는 방식으로 감을 매달아야 했다.
작년에 아이들이 곶감을 아주 잘 먹었다. 작은 애 새들이는 겨울방학 때 곶감 한 상자를 거의 다 혼자 먹어 치웠다. 과자나 빵 등 인스턴트식품을 안 먹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집에서 만드는 곶감이나 홍시 등 전통식품이 완전히 입에 익은 듯하다. 대안학교의 생활관 식단이 아이의 입맛을 그렇게 바꿔 놓은 것 같아 내 몫도 안 남기고 곶감을 다 먹어 치웠지만 속으로 반가웠었다.
그런 새들이가 떠올라 감을 깎다가 새들이에게 전화를 했었다. 작년보다 서너 배는 감을 더 깎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는데 새들이 반응은 별로 신통치가 않았다. 자기도 그날 선생님과 감 따러 갔었고 오후에는 큰 가마솥에 나물 삶는 일을 도왔다고 했다. 착 가라앉아 있는 새들이 목소리에 요즘 지내는 게 좀 힘든가보다 싶어 일부러 얘기를 재미있게 이끌어가다가 적당한 때에 전화는 끊었다.
감을 깎을 때도 그랬지만 감을 다 달아 놓고 마당에 내려서서 감들을 바라보니 처마 끝에 달아놓은 풍경이 댕당딩당딩동 하고 요란스레 축하 음을 들려주었다. 들판도 온통 누런 황토 빛인데 감도 황토 빛이고 또 우리 집도 황토집이라 온 세상이 누런색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감을 깎는 동안 나는 아들 생각만 한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릴 적 기억들도 많이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