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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표 국세청차장이 31일 기업 세무조사 운용 현황과 방향에 대해 국세청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군표 국세청차장이 31일 기업 세무조사 운용 현황과 방향에 대해 국세청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국세청 제공
"도대체 누가 '쥐어짜기'라는 용어를 썼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야구에나 쓰는 말 아닌가. 일상적이고, 법에 따른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쥐어짜기식 세무조사는 없다"

31일 오전 서울 국세청 기자실. 전군표 국세청 차장의 낮은 톤 목소리가 올라갔다. 전 차장은 이어 "여러분(언론)들이 하도 안 믿기 때문에, 조사국장 등과 어제 고민을 하다가 공개하기로 했다"면서, 올해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 건수를 공개했다.

국세청이 내놓은 기업들에 대한 조사 건수(대기업 기준)는 올 9월말 현재 684건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4%가 줄어든 것이다.

또 현재 진행중인 조사건수와 남은 기간을 감안하더라도, 약 18%가 감소할 것이라고 국세청은 밝혔다. 작년에는 1151건의 세무조사가 있었지만, 올해는 934건 정도라는 것이다.

국세청의 이례적인 회견, 청장이 직접 지시

국세청은 이날 8쪽 분량의 '세무조사 운용 현황'이라는 자료를 배포하고, 차장이 직접 기자실을 찾았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진행하면서, 언론을 상대로 세무조사 현황과 진행 내용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상률 조사국장은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기업들의 (세무)조사 건수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관련한 이례적인 회견은 최근 들어 정부의 세금 수입 감소에 따른 적자 재정이 예상되고, 정치권에서 여야간 감세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국세청이 대기업을 상대로 '쥐어짜기식 세무조사에 나서고 있다'는 언론의 잇단 지적이 계기가 됐다.

실제로 전군표 차장은 이날 브리핑 과정에서 "도대체 누가 '쥐어짜기'라고 세무조사를 표현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일상적이고 통상적인 국세청의 업무를 두고, '쥐어짜기'라든가, '세금폭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언론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당초 오늘 회견에 청장이 직접 참석해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려고 했었다"면서 "언론에서 사실과 다르게 세무조사를 해석하고 있어 이를 분명하게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리한 세무조사 확인되면 조사반 철수할 것"

국세청은 이날 회견의 대부분을 '기업 세무조사가 세수 확보 차원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국세청은 이례적으로 각 지방청 조사국에서 조사하고 있은 기업들의 조사 건수를 공개했고, 현재 진행중인 세무조사는 절차상으로도 올해 세금 수입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9월에 세무조사가 착수된 경우 12월이나 돼야 종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현재의 조사인력 상 세무조사를 통해 세수를 확대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세무조사 시간이 최소 50일이상 시간이 들고, 조사인력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쥐어짜기식' 조사 확대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전 차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지방청에서 세수를 늘리기 위해 '쥐어짜기식' 무리한 세무조사가 확인될 경우 조사반을 철수할 것"이라며 "이어 해당 기관과 개인을 엄중 문책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세청 본청에서 나서서, 기업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해당 직원들에게 혹시 있을지도 모를 무리한 세무조사를 아예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힌 셈이다.

일선 직원들 "기업들 여론몰이에 너무 수세적인 것 아닌지…"

이를 두고 기업들은 일단 환영하는 입장인 반면, 일선 국세청 직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선 직원들 사이에서는 "기업들의 여론몰이에 국세청이 너무 수세적으로 나가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기업 세무조사는 국세청 본연의 업무"라며 "9월 들어 언론에서 재계 쪽의 의견을 가지고 국세청이 마치 기업들을 상대로 무리한 조사를 진행하는 것처럼 사실을 오도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올해는 부동산 투기와 외국 펀드 조사 등으로 기업세무조사가 당초보다 늦춰졌을 뿐"이라며 "그런데도 경제신문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삐딱하게 보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본청에서 무리한 세무조사는 없다고 하는 발표 취지에 공감하지만, 자칫 세무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릴수도 있는 부분은 없는지 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금을 알 만한 전문가나 학자들은 국세청의 (대기업의) 세무조사 비율이 턱없이 낮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재계와 일부 언론의 여론몰이에 국세청이 너무 수세적으로 나가는 것은 아닌지…"라고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국세청에서 기업들을 상대로 무리한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하지만 국세청에서 당초 5년에 한 번 하던 (대기업) 정기 세무조사를 4년으로 앞당긴 것 등을 감안할 때 실제 기업들이 국세청의 말을 얼마나 피부로 느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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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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