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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렉2>의 명장면으로 꼽히던 "고양이의 변신"
영화 <슈렉2>의 명장면으로 꼽히던 "고양이의 변신" ⓒ CJ엔터테인먼트
작고 여린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사람의 아기가 그렇듯, 강아지와 아기 고양이도 그렇다. 이들을 볼 때면 어느 순간, 온갖 복잡한 골칫거리를 뒤로 하고 그들의 사랑스러운 털을 쓰다듬게 되는 것이다. 작은 회색 고양이 노튼의 '아빠' 피터 게더스도 마찬가지였다.

관계 자체를 신뢰하지 않고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없다고 믿는 회색 도시의 작가 피터 게더스는 옛 여자친구 신디가 선물한 생후 6주의 고양이 노튼을 만난다. 그 순간 그의 열 가지 신조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그 중 열 번째는 "나는 고양이를 싫어한다"였다.

"이 작은 고양이가 신디 손 위에서 나를 향해 야옹하는 순간, 나는 노튼이 마침내 나에게 온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알게 외었다. 이것 또한 플래시처럼 팍 나한테 박혔다. 나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설명할 길도 없다. 그 이전이나 이후로도 남자든 여자든 동물이든 나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앞으로도 다시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중략) 난 노튼을 바라봤다.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작은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녹아버렸다. 죽어버렸고, 사라져버렸고,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파리에 간 고양이> 34-35쪽


<파리에 간 고양이>와 <프로방스에 간 낭만고양이>는 피터 게더스가 고양이 노튼과 함께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으로 노튼은 상당히 (작가인 피터 게더스보다도 훨씬 더) 유명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16년이 지나,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에서 노튼은 암에 걸려 죽는다. 처음 게더스의 손바닥 위에 올라오던 때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노튼은 게더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변화를 선사하게 된다.

연작의 1, 2권인 <파리에 간 고양이>와 <프로방스에 간 낭만고양이>
연작의 1, 2권인 <파리에 간 고양이>와 <프로방스에 간 낭만고양이> ⓒ 김정혜
게더스가 말했듯, 모든 고양이는 그 주인에게는 매우 특별하다. 노튼 역시 게더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이나, 더불어 매우 영리하고, 그래서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고양이이기도 하다. 비행기 여행을 몇 시간이나 하면서도 말썽을 부리지 않고, 게더스와 함께 몇 킬로미터를 목줄 없이 걷기도 하며, 한참을 숲에서 놀다가도 게더스가 노튼의 이름을 부르면 바로 "야옹" 하며 나타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튼이 사랑받았던 것은, 그가 사랑받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 심지어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조차도 마침내는 노튼의 털을 쓰다듬으며 잠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에 집중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노튼의 유명세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의 처음부터 중반정도까지는 <파리에 간 고양이>와 <프로방스에 간 낭만고양이>로 인해 노튼이 얼마나 유명해졌고, 방방곡곡에서 얼마나 환대를 받았는지에 대한 묘사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애완동물을 직접 길러보지 않아 그들의 평균 지능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으므로, 노튼이 영리한지 어떤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게더스가 노튼으로 인해 관계와 사랑과 인생에 대한 태도에 있어 확연한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파리에 간 고양이> 14쪽)던 게더스는 사랑하던 고양이의 죽음 뒤에 마침내 이렇게 적는다.

"나는 노튼과 함께한 16년이 넘는 세월을 사랑했다. 나는 노튼을 사랑했다. 다음 고양이가 노튼만큼 똑똑하거나 경이로울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중략)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또 다른 남자/고양이와 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을 겁내야 할까? 결코 아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나는 다음 고양이 역시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내 삶에 들어온 다음 고양이와 보내게 되는 시간이 얼마가 되든 나는 그 세월을 사랑할 것이다."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313쪽


게더스가 고양이에게 얻은 것들을 일일이 적을 수 없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아마도 애완동물을 (혹은 사람의 아기를) 길러본 사람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몇 단어로부터도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여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의 마지막 부분은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3부작의 마지막 권,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3부작의 마지막 권,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 media2.0
그래서 나는 이제 도약을 해야 한다. 노튼의 모습, 특히 노튼이 새끼일 때의 모습을 떠올린다. 노튼은 세상에서 가장 점프를 잘한 고양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뛰어오르기를 좋아했다. 노튼이 아파트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싱크대 위에 앉아 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노튼이 현관문의 꼭대기를 쳐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닥에서 아마 2.5미터 높이에 있을 아주 얇은 문짝의 윗면. 싱크대는 아마 90센티미터 높이였을 것이다. 높이는 그리 무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착지해야 하는 곳이 기껏해야 폭 5센티미터밖에 안 된다. 나는 노튼이 다리를 아래로 모으고 고양이가 뛰어오를 때 취하는 자세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소리내서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실수하는 거야. 성공할 수 없을 거야” 내 고양이가 나를 쳐다본 것도 기억난다. 그 표정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아, 그래요?!”

그리고 노튼은 점프했다. 문짝 꼭대기에서 노튼의 몸은 흔들리고 들썩거렸다. 하지만 곧 균형을 잡고 제대로 섰다. 지금 되돌아보면, 노튼이 점프에 성공했는지 여부는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 점프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노튼은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 아주 행복해했다. 그래서 나는 노튼처럼 하려고 한다. 뛰어오르고 그 사실에 대해 행복해할 것. 우리 모두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노튼에게서 배웠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교훈이다. 고마워, 친구.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313-314쪽.

덧붙이는 글 | 1. 제목은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17쪽에서 인용한 것임.
2. 연작이니만큼, 순서대로 읽어야 재미가 더하다. 특히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는 <파리에 간 고양이>나 <프로방스에 간 낭만고양이> 중 한 권이라도 읽은 뒤에 손에 잡을 것. 앞 내용을 모르면 책의 중반정도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유명세 “자랑”에 기운이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조동섭 옮김, Media2.0(미디어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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