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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광화문에서 집회가 열렸다. 이 시위를 막기 위해 서울시내 도처에는 경찰 장갑차 10여 대가 배치되고, 무장한 경찰과 무장군인이 배치되었으며 시위대열은 이 기세에 눌린 탓인지 수십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시위대 숫자와 같은 수의 경찰이 시위대에 섞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시위대의 모습을 구석구석 담았다. 집회를 취재하는 해외통신사 외국인 기자의 모습도 경찰의 카메라에 담기고 촬영하는 경찰을 찍는 기자의 카메라는 경찰에 의해 제지받았다.

집회를 주도한 연사는 연설을 끝내자마자 경호원에 둘러싸인 경찰서장으로 보이는 자에 의해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으며 검문을 받았다. 그리고 집회는 끝났고, 집회장을 떠나는 해외통신사의 외국인 기자는 상당 거리를 이동하면서 경찰의 미행을 당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소설이거나 지난 70-80년대 이야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이야기는 2005년 터키의 현실이다.


▲ 경찰로 보이는 자들이 캠코더를 이용해 집회참가자들을 촬영하고 있다. 목격된 캠코더의 수는 10여대.
ⓒ 김기성
▲ 경찰 고위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집회연설자를 검문하고 있다.
ⓒ 김기성
11월 1일 터키 디야르바크르주 디야르바크르시 코숄루 공원에서 터키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2000년이 넘는, 만리장성 다음으로 긴 성벽을 가진 디야르바크르는 소위 쿠르디스탄의 수도라 불리우며, 탄압받고 있는 터키 내 쿠르드족의 중심지다.

낮 1시경 디아르바크르시 중심가인 오피스거리에는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정복경찰이 순찰하고 있었고, 정복이 모자랐는지 사복차림에 경찰 조끼만을 걸치고 나온 경찰도 보였다.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었지만 시내 도처에 배치된 경찰 장갑차와 무장경찰 때문인지 집회참가자의 수는 생각보다 적었다. 오피스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골목에는 무장군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 디야르바크르 번화가인 오피스(OFIS)거리에 총을 들고 경계중인 무장경찰과 골목안에 총을 들고 경계중인 군인
ⓒ 김기성
핸드마이크를 들고 연설문을 낭독한 여성은 낭독이 끝나자마자 집회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경호원에 둘러싸인 경찰 고위관계자의 검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몇 마디 말로 대응해보지만 곧 순순히 신분증을 제시했다. 만약 끝까지 신분증 제시를 거부했다면 그녀는 현장에서 체포되었을지도 모른다.

▲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여성. 한 달 후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 김기성
경찰로 보이는 자들이 시위 참석자, 언론사 기자들과 뒤섞여 비디오카메라 등을 이용해 시위 구석구석을 담았다. 그리고 집회가 끝난 후에도 기자는 미행을 피해 거리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통역의 말에 의하면, 사진이 담겨있는 노트북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의 도난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카페에 들어와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통역의 조언에 따라 벽을 등지고 사진 등을 편집하고 있다.

▲ 기자를 촬영하고 있는 경찰로 보이는 자를 촬영하려 하자 얼굴을 가리고 있다
ⓒ 김기성
애초 시위 취재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 지난 10월 2일경 이스탄불에서는 독방에 수용되어 있는 쿠르드노동자당 당수 오잘란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시위과정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다. 사망한 청년은 19세의 아틸라.

이스탄불, 터키 경찰이 쿠르드인 집회참가자 사살

10월 2일 터키 대도시인 이스탄불 마스라크 거리에서 오잘란 지지 집회를 벌이던 쿠르드인들에게 경찰이 사격을 가해 한 명이 사망, 다른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

19살 아틸라는 가슴과 위 부분에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날 집회는 쿠르드 지도자인 압둘라 오잘란 석방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소식을 전해 들은 이스탄불의 또 다른 지역 바그실라 구역에서는 청년쿠르드 그룹이 이스탄불시 트로폴리탄 수송국이 운영하는 버스 두 대에 불을 지르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외 터키 도시 전역과 남동쪽 쿠르디스탄 지역에서도 오잘란 지지 청년들이 아틸라 사망소식에 항의하는 거리집회를 곳곳에서 열었다. / 쿠르드커뮤니티
이곳은 쿠르디스탄의 수도라 불릴 정도로 쿠르드인의 수가 많은 곳이기에 이곳에서 충돌이 일어난다면 이스탄불보다 강경한 진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10월 29일로 예정되었던 집회가 11월 1일로 연기되기도 했다.

다행히(?) 시위대는 오잘란의 석방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집회는 무사히 끝났고 시위대는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이 한 달 후 어디에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집회참가자를 세밀하게 촬영했다가 한두 달 후 집이나 거리에서 체포하는 일이 많다고 현지인들은 전한다.

터키정부는 집회참가자를 현장에서 체포하던 관행을 몇 년 전부터 사후 체포 방식으로 전환했다. 시위 때마다 쿠르드위성방송의 카메라가 항시 있으며, 때때로 외신기자들도 취재를 오기 때문에 현장 체포 때 자행되던 폭행 등으로 인권 문제가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터키정부는 몇 년 전부터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EU는 터키 내의 인권상황 특히 쿠르드 민족문제를 먼저 해결할 것을 터키정부에 요구해왔다. 대한민국의 형제국가 터키, 중동 지역에서 가장 민주화된 국가 터키, EU 가입을 준비하고 있는 터키는 현재 계엄상황인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 멀리 보이는 경찰 장갑차. 시위전부터 디야르바크르시내에 여러 대가 주둔했다.
ⓒ 김기성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자보에 함께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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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가요 연구자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으면서, 동네문화기획자로도 활동중입니다. 튀르키예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안경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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