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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안마을 주변에 대형마트인 B마트가 들어선다.
ⓒ 최연종
전남 화순읍에 있는 남산이 성(城)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지금의 군청에 해당하는 화순현의 치소(治所)일 가능성이 높아 남산 고성지(古城地)가 고려시대 이전의 화순의 역사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특히 남산이 토성일 경우 이는 고려시대 이전에 축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고려시대 이전의 치소 위치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더욱이 치소는 중앙 지배 권력의 백성들에 대한 직접지배 여부 등을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돼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화순현의 치소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군민회관~ 화순군 보건소를 축으로 일정하게 배열된 돌.
ⓒ 최연종
성곽 전문가에 따르면 고려시대 이전에 쌓은 성들은 치소가 성 안에 있어 남산이 성이라면 지금의 성안마을 인근이 치소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남산이 고려시대 이전 토성으로 밝혀질 경우 토성 안에 관아(官牙)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아 성안 마을을 정밀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성의 유무나 축조시기 등은 성벽을 잘라서 나온 유구(遺構)로 판단하는데 석렬(石列)은 성의 축조시기를 판정하는 기준이라는 것. 석렬이 한쪽이냐 양쪽이냐에 따라 시기가 다르다.

석렬은 6세기 중반 이후 양쪽으로 나타나고 9세기 이후에 판축이 두꺼워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판축은 초기에는 폭이 넓고 짧은데 비해 이후에는 축조기술의 발달로 폭이 좁아지면서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내륙에는 읍성(邑城)이 흔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부분 읍성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해안가에 쌓았기 때문이다.

▲ 남산 고성의 성문으로 추정되는 문지.(전봇대 주변)
ⓒ 최연종
기자는 화순군민회관이 있는 북쪽에서 성안마을인 남쪽으로 축을 형성하면서 돌들이 일정하게 배열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성의 유무를 추정하는 단서로 돌이 지나가는 밑으로 유구(석렬)가 나타날 가능성 높다.

주변에는 산죽이 축을 따라 자라고 있다. 산죽은 과거에 화살로 사용됐다. 읍사무소 인근 서쪽에는 성문에 해당하는 문지(門地)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삼국시대~ 조선시대까지의 토기편들이 많이 발견됐다. 특히 이곳에 보도블록을 깔면서 원형이 훼손돼 있는 상태다.

남산이 성으로 밝혀지면 성의 전체적인 연장선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성곽의 연장선은 군민회관에서 성안마을을 따라 보건소와 신 터미널을 잇는 것으로 추정되는 데 정확한 경계는 발굴해야 알 수 있다.

▲ 성문으로 추정되는 곳에 들어설 예정인 게이트볼장.
ⓒ 최연종
남산은 화순군민회관과 서양정을 지으면서 원형이 훼손됐다. 뿐만 아니라 남산 고성의 바깥 성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최근 대형 마트가 입점을 서두르고 있어 성곽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는데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화순군은 성문으로 추정되는 인근 밭에 게이트볼 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화순읍 광덕리 공용청사부지에 문화광장을 조성하면서 기존 게이트볼 장을 이용할 수 없게 돼 이곳에 새로 조성한다는 것.

화순군 관계자는 "이번 시굴조사 결과 이곳이 토성으로 밝혀지면 예정 부지를 다른 장소로 옮길 계획"이라고 말한다.

▲ 남산 정상부에 조성된 활터(서양정)
ⓒ 최연종
남산이 성으로 밝혀지면 치소, 문지, 우물 등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예로부터 남산 주변에는 10개의 우물인 십정(十井)이 있었다고 전한다.

성안에 한 곳을 비롯해 읍사무소 주변 1곳, 남화순역 인근에 1곳, 광덕리 3곳 등 10곳이 있었다는 것. 10개의 샘 가운데 샘의 머리가 남산에 있었다고 해서 남산 입구에는 자연석에 십정원두(十井元頭)라는 비석을 세웠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는 남산을 중심으로 시장터 일부 등 화순읍 절반이 성에 해당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 성곽으로 추정되는 곳에 인위적으로 쌓아놓은 석축.
ⓒ 최연종
화순은 전남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화순에 대한 지명도 그럴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설명이다.

향토문화에 조예가 깊은 A씨는 "남산이 성터로 밝혀지면 후손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며 "과거 방죽이 있었던 화순읍사무소도 이전하고 그 자리에 성터와 연계해 역사공원으로 가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남도의 중심에 있는 화순 본래의 이름을 찾는다는 것이다.

한편 화순군은 남산의 고성(古城)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3일 시굴조사에 착수했다.

덧붙이는 글 | 남도뉴스는 남산 성의 유무를 밝히고 성터로 확인되면 복원해야 한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화순군은 오늘부터 남산고성의 유무를 밝히기 위해 시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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