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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동복호 수몰지역 바위에 새겨진 우암 선생의 묵적.
화순 동복호 수몰지역 바위에 새겨진 우암 선생의 묵적. ⓒ 최연종
화순 동복호에 수장돼 있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묵적(墨迹)이 한 향토사학자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향토사학자 송암 문제선 선생이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옛 창랑정(滄浪亭) 인근 너럭바위에 새겨진 우암 선생의 묵적을 현지 탐사를 거쳐 확인한 것이다.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옛 창랑정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청정제(淸淨齊). 우암 선생이 창랑 정암수 선생과 교우하면서 정(亭)이 곱고 깨끗하다고 해서 붓을 들어 친히 휘호해 정자 앞 너럭바위에 새겨 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씨는 우암 선생이 이곳에 묵적을 남겼다는 동복읍지의 기록을 보고 지난 6월, 가뭄으로 동복호 수심이 얕은 때를 이용해 현지를 탐사했다.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지 못한 데다 항상 물이 차 있어 몇 년간을 애타게 기다린 뒤였다. 더욱이 우암 선생의 묵적은 댐을 만들면서 일정한 장소에 옮긴 뒤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송암 문제선 선생이 우암 선생의 묵적을 탁본한 것.
송암 문제선 선생이 우암 선생의 묵적을 탁본한 것. ⓒ 최연종
문씨는 심홍섭 화순군 문화재 전문위원과 창랑 선생의 후손인 우창 정근호 선생 등과 함께 동복수원지 경비정의 협조를 받아 창랑정 터를 찾아 가뭄으로 드러나 있는 선생의 묵적을 발견했다. 20년 넘게 물 속에 잠겨있던 선생의 발자취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문씨는 선생의 소중한 발자취를 남기고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탁본을 했다.

선생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너럭바위는 새들의 분비물과 물살에 시달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했다는 게 문씨의 설명이다.

문씨는 “다른 지방에서는 우암 선생의 묵적을 바위에 새겨 놓고 문화유적지로 활용하고 있다”며 “탁본을 통해 망향정 등에 비석을 세우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암 송시열 선생(1607~1689)은 이이의 학통을 계승한 주자학의 대가로서 기호학파를 이끌며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벼슬로는 이조판서와 좌의정, 우의정 등을 지냈다. 대전에서는 우암 선생을 기리기 위해 우암문화제를 열고 있으며 선생의 유적으로 화양서원(華陽書院)과 만동묘(萬東廟)터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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