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들깨를 마당에 널어놓고 말릴 겸 체로 걸러 내다가 우편물을 한아름 받았다. 우리 집에는 거의 매일 우편물이 오는데 이날은 유난히 많이 왔다. 우체부 가방에서 끈으로 묶은 내 우편물 뭉치를 빼 내자 가방이 홀쭉해 졌을 정도다.
울고 싶었는데 뺨 맞는다고, 벌써 몇 말 째 체를 흔들어 대면서 들깨를 고르느라 어깨가 뻐근해 있던 나는 우편물을 보고는 이참에 좀 쉬자 싶어 철퍼덕 바닥에 퍼질고 앉아 끈을 풀고 우편물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시골 타작 마당으로 날아 든 세상 소식들이 한 가닥 한 가닥씩 풀렸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펴내는 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 가을호가 제일 두꺼운 우편물이었다. 후배 작가 이재규씨가 6·15 남북작가대회 때 평양을 다녀왔다고 여러 얘기들을 해 주었는데 마침 그의 이름이 보여 펼쳐봤더니 작가대회 참석 후기들을 모두 읽고 그 내용을 소개 한 글이었다.
신경숙은 북한 어린이들의 기계 같은 예술 공연을 보고 북한권력자들은 비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쯧쯧 하고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황석영은 <조선일보>에 방북기를 쓴 모양인데 의아했다. 글쓴이의 주체사상 이력이 글의 곳곳에 배어있어 나도 몰래 피식 웃었다. 안도현 시인의 글은 앞뒤가 잘 안 맞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또 받았다.
농민신문사의 월간지 <디지털 농업>도 왔다. 농협에서 펴내는 아주 보수적인 화학농업중심의 농사잡지인데 요즘은 생태환경농업을 하는 내 주변 분들의 글과 소식이 심심찮게 보여 점차 읽는 쪽수가 늘고 있다.
이현주 목사님이 펴내는 <풍경소리>. 이 책은 공짜다. 독자들이 성의껏 내는 성금으로 발행된다. 천연색 편집은 전혀 하지 않는다. 재생 종이를 쓰고 사진도 없다. 그래도 글의 무게와 진정성은 최고다. ‘배추 값 더 올라도 돼요’라는 제목이 붙은 이정진 선생님의 글을 먼저 봤다. 무주군 진도리에 사시는 선배 귀농자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치는 금치가 되어야 한다고 팻말 시위라도 하자고 주장하셨다.
녹색연합 기관지 <작은것이 아름답다>도 왔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희망세상>도 왔다. 녹색대학 소식지를 뜯었다. 아슬아슬한 시기를 이제 넘긴 것 같아 반갑고 대견하다. 이정진 선배의 남편이자 이 대학 총장인 허병섭 목사님 사진부터 봤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전북지역의 민중언론 <열린전북>은 여전히 몇몇 필진들로만 글이 채워졌다. 뻔한 틀거리에 몇 사람의 문집 같은 한계를 못 벗고 있다. 국판의 작은 잡지에 월 1만원씩 내는 성금을 중단 할까 보다.
구들학회에서 온 편지가 있었다. 급히 뜯었다. 엊그제 최영택 회장 할아버지가 구들학회 홍보 좀 해 달라는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이 편지는 이른바 ‘보도자료’인 셈이다. 내가 <오마이뉴스> 기자가 되고나서 이런 보도 요청을 가끔씩 받는다. 최근에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주최를 하여 11월 26일에 구들학회 학술 세미나를 한다는 안내장이었다. 오전 9시부터 여러 주제발표를 하고 오후에는 경복궁 구들견학도 계획되어 있었다.
11월 26일이니까 22일쯤에 기사를 써야 되겠다 싶다. 그때 가서 회장님에게 전화를 한 번 더 드려야겠다. 근데 가만 있자, 그날은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귀농인 송년의 밤 행사가 있는 날로 들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구들학회 세미나 도중에 빠져 나와야 하나 어쩌나 날짜를 다시 확인을 해 봐야겠다.
정신없이 우편물을 뒤적이다보니 해가 한발은 되게 서쪽으로 기울었다. 그래도 최성현씨가 쓴 <작은것이 아름답다>의 마중물을 보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최성현씨가 쓴 책은 다 봤다. 그분이 쓴 장일순 선생 일대기 <좁쌀 한 알>을 읽으면서는 엉뚱하게도 최성현 추모사업회 일을 맡아 이 분 일대기를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서 혼자 또 쓱 웃었다. 언제 곧 만나게 될 것 같은 분이다.
내가 일은 않고 잡지와 편지들을 보고 있는 동안 들깨와 체는 하염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