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동안 20m 크레인 고공 점거농성을 벌인 끝에 61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토록 외쳤던 노조를 인정받았다. 라면과 초코파이로 끼니를 때우고 추위를 견디고서야 노사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 것이다.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Q동 점거농성에 참여했던 김흥주(33)씨는 "너무 당연한 것임에도 점거농성을 해야만 노조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우리 현실을 느꼈다"고 씁쓸해 했다. 그러면서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으로 11일간의 점거농성을 끝낸 소감을 밝혔다.
5일 저녁 민주노총전남동부지역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에서 3년째 일해오고 있다. 제대로 쉬지않고 한달간 일해서 받는 월급은 110여만원 정도다.
"예전에는 노조들이 총파업하는 모습을 보면 '왜 저럴까'라고 고개를 가우뚱했다"는 김씨가 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되고 농성까지 참여하게 된 것은 비정규직이 처한 현실을 겪었기 때문.
그는 "정규직과 똑같은 라인에서 똑같이 일하는데도 임금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며 "정규직은 4조3교대 근무로 한달에 7∼8일 정도 쉬는데 우리는 3조3교대여서 2일밖에 쉬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두 번 쉬는 것도 동료들끼리 날짜를 잡으면서 서로 싸우는 상황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청(현대하이스코)의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 논란에 대해 "노동청에 진정을 냈지만 제대로 조사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노동청이 철저하게 조사한 뒤 2년 이상 근무자들은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 11일만에 점거농성이 끝났는데 소감은.
"시원섭섭하다. 힘들었던 점거농성에 비해 협상결과는 미흡했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크레인에서) 내려오니까 가족들이 기뻐하는 것 같다."
- 확약서 내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만스러운 것 같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해고자복직과 노조인정, 현대하이스코가 직접 대화에 나서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복직시킬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오늘 유치장에서 나왔는데 많은 동지들이 유치장에 남아 있다. 민형사상 처벌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는데 그렇지도 못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현대하이스코가 서명식 자리에 나오지 않은 것도 유감이다. 약속한 내용이 빠른 시일내로 지켜지기 바란다."
- 협상 내용을 전해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협상하는 사람들은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인한 불상사를 걱정했던 것 같다. 노조활동을 인정한다는 부분이 확약서에 포함돼 있는데 이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을 점거농성까지 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 처음부터 점거농성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현대하이스코가 1주일 이내면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거농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하이스코도 만만치 않은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조합원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려야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 의지를 더 강하게 했다. 그렇게 함께 하는 조합원들이 있어서 꿋꿋하게 잘 버텼던 것 같다."
- 점거농성을 '승리의 투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과격한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노조를 결성한 뒤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대화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조를 결성한 6월 13일부터 점거농성 전까지 하청업체와 원청인 현대하이스코는 한번도 대화에 응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노조를 인정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데도 인정하지 않고 간부들을 전출보내거나 직무정지, 대기발령과 위장폐업을 하면서 우리를 탄압했다.
점거농성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억울함을 알리고 싶었다. 원청에서는 '하청업체 폐업은 우리와 상관없다'고 하고 하청업체 소장은 '하이스코 꼭두각시밖에 안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호소할 곳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당연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절박했다. 사측이 점거농성으로까지 갈 수 밖에 없게 만든 측면이 강하다. 누군들 이런 일을 하고 싶겠는가."
"불법파견 철저히 조사해야"
- 비정규직으로서 공장생활은 어땠나.
"정규직과 똑같은 라인에서 똑같이 일하는데도 임금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정규직은 4조3교대 근무로 한달에 7∼8일 정도 쉬는데 우리는 3조3교대여서 2일밖에 쉬지 못했다. 두 번 쉬는 것조차 동료들끼리 날짜를 잡으면서 서로 싸우는 상황도 많았다. 점심시간에 담배 필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할 정도로 너무 열악한 상황이다."
- 작업지시는 누구에게 받았나.
"작업지시서는 하이스코가 작성한 것이다. 하청업체가 아닌 하이스코의 작업지시에 따라 일했다. 애초 작업 지시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원청인 하이스코 반장 등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지시에 따라서 일했다. 내가 일했던 포장반을 보자. 정말 완전도급이라면 내가 소속된 업체의 지시를 받아서 하면 된다. 그런데 하이스코 반장 등이 정상포장 또는 가포장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 노조결성 이후 4개월간 대화를 촉구해왔는데, 이때 가장 힘들었던 일은.
"노조를 만들자 하청업체들은 간부들을 정직, 대기발령 내더니 4개 업체가 위장폐업으로 노동탄압을 일삼았다. 폐업을 하니까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힘들었다.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챙겨야 하는데 안되니 힘들었다. 우리가 그렇게 호소해도 사측이 아예 무시해버리는 동안 천막투쟁, 선전전 등을 벌였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시민들과 시민단체 등이 지지해줘서 고마웠다."
-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에 대해 노동청에 이미 진정을 냈는데 어떻게 됐는가.
"노동청 조사가 미흡하다. 철저히 조사해주길 바란다.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니까, 원청인 현대하이스코가 노동청 조사와 관련, 하청업체 직원을 교육시켰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조사받으라는 내용이다. 노동청은 조사를 한다면서도 작업 현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주임들에게 연락해서 전화상으로 조사했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분노했다. 불법파견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 2년 이상 근무자들은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해줘야 한다."
- 지금 가장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점거농성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하루라도 빨리 풀려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확약서에 서명한 것처럼 하청업체와 원청업체가 협상내용을 최대한 빨리 이행하기를 바란다."
| | | "1라운드 승리했다, 2라운드 시작할 때" | | | [현장] 노조 승리보고대회 "초코파이 먹었지만 행복했다" | | | |
| | ▲ 5일 순천 조은프라자 앞에서 열린 승리보고대회 및 석방 환영대회에서 참석자들은 현대하이스코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 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와 민주노총전남동부지역협의회 등은 5일 오후 '승리보고대회 및 석방환영대회'를 열고 확약서 도출을 자축하며 결의를 다졌다.
전남 순천 조은프라자 앞에서 열린 이날 집회에는 농성 노동자 17여명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조, 여수건설노조 등 140여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끝까지 투쟁해서 공장으로 되돌아 가자"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치며 '절반의 승리'를 자축했다.
"끝까지 투쟁해 공장으로 돌아가자"
박상욱 민주노총전남동부지역협의회장은 "하이스코 투쟁이 승리해서 반갑다"며 "자진출두로 우리의 정당성과 현대자본의 불법성, 폭력성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장은 "우리는 하이스코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의 노동현실이 얼마나 어려운지 폭로했다"며 "사측은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어도 인정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목숨 건 투쟁을 해야 하는 현실을 똑똑히 봤다"고 말했다.
이어 "10일동안 목숨을 건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원청이 교섭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측은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고 경찰 특공대를 부추키는 등 집단살인 교사혐의가 있다"고 성토했다.
류광수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부본부장은 "1차전을 마무리하고 비정규직 철폐라는 2차전을 준비하자"며 "약속이 이행되도록 투쟁하자"고 말했다.
집회를 마친 농성 노동자 17명과 관계자들은 민주노총 전남동부지역협의회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농성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관계자 등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40대의 한 농성자는 "초코파이를 먹었지만 행복했다"며 농성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