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우연히 사촌과 무작정 떠난 전라도 여행에서 만난 섬, 나로도(羅老島). 문득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마 나로도에 다리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으로 기억된다.
그냥 '나로도'라는 이정표를 보고는 '저기 한 번 가볼까?' 한 것이 그 섬으로 가게 된 이유라면 이유였다. 'ㄴ'과 'ㄹ'의 우리말 울림소리 때문인지 섬 이름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언제 한 번 기회가 닿으면 다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왜 이 섬이 '나로도'가 되었을까. 고흥 앞바다를 지나는 중국 상인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낡은(老) 비단(羅)같은 섬"이라 불러 나로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정말 먼 바다에서 보면 나로도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낡은 비단 같을까. 푸른 바다 위에 아스라이 떠 있는 섬을 보고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옛사람의 정취가 아름답다.
바람에 나부끼는 낡은 비단 같은 섬
지금 산에는 온통 단풍이 물들고 들에는 억새가 한창이다. 순천을 지나 벌교에서 15번 국도를 따라 가는 길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억새가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고흥으로 가는 국도에는 '희망의 땅, 고흥'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고흥의 외나로도에는 우주센터 건립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우주여행의 꿈을 실현시킬 날이 멀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보니 저 멀리 나로1대교가 보인다. 섬 풍광에 빠져 조금 가다 보니 나로2대교에 닿았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는 다리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번에 보니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다리 아래에는 낚시를 즐기는 연인들도 보였다.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으로 봐서 오늘은 입질이 시원찮은 모양이다. 예전에 왔을 때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순천에서 왔다는 어느 낚시꾼 아저씨의 말처럼 그 곳의 물살이 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외나로도에는 멋진 방풍림을 가진 해수욕장이 있는데 해송들이 아름드리라 지금까지 보아 온 여느 해수욕장과는 사뭇 다르다. 수령이 대개 300년이 되었다는데 그 소나무들을 본 순간 비록 안개 속 풍경은 아니지만 사진가 배병우의 소나무 작품들이 생각날 만큼 빼어난 소나무였다.
나로도를 찾으면 꼭 경험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해수욕장의 아름드리 소나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금 건설 중인 우주센터 내에 있는 우주 체험관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산 중턱에 우뚝 서 있는 모습도 일품이지만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또 시간이 난다면 면 소재지에서 나로도를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을 운행하는데 차로 오가면서 보지 못하는 비경을 볼 수 있다.
아름드리 해송과 우주 체험관... 가족과 함께 즐길 곳 많아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배에서 막 내린 아저씨께 '어느 식당으로 가면 맛이 좋은가요?'하고 여쭸더니 수협 2층으로 가란다. 다시 차를 돌려 외나로도에 있는 봉래면 소재지의 수협 2층에 위치한 식당 진미회관에 자리 잡았다. 반찬의 가짓수에 환호했고 그 담백한 맛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양념게장은 꼭 장모님께서 갓 담근 그 맛이었다.
또 나로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삼치회이다. 구로시오난류권의 영향으로 해마다 8~12월이면 삼치 떼로 성시를 이룬다. 이 기간 동안 나로도를 방문한다면 꼭 삼치회를 맛보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삼치는 나로도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로도 삼치는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 봉래면에는 우주센터 건립공사로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들이 쉴 새 없이 다닌다. 우주센터 건립 부지 쪽으로 가다가 좌회전하면 바다가 보이는 예쁜 창포마을이 있다. 섬에서 느끼는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섬 집들의 아담함과 깜찍함이다. 집에서 가까운 남해군만 해도 그렇다. 집들의 색깔이 알록달록한 것이 마치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는 집들 같다. 창포마을 또한 남해와 그 느낌이 비슷한데, 섬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가 아닐까?
우연히 들러 새로 사귄 풍경. 이런 것 또한 여행길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마침 그 때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모여 고구마를 캐고 있는데 그 땅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얘기하자면 그 땅은 고구마 반 자갈 반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자갈밭에 고구마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흔히, 고구마라면 황토밭에서 난다는 생각을 했었다.
창포마을은 바닷가에 있지만 농사를 위주로 살아가는 마을이다. 산 아래에 있는 밭에서는 밭을 갈기 위해 소 두 마리가 노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이 있어 30여분 뒤 그 곳으로 다시 왔을 때는 동네 어르신들도 일을 돕고 계셨다. 막 새참시간이 되었는지 창포마을 이장님께서 감이라도 하나 먹고 가란다. 못생긴 단감 하나를 옷에 쓱쓱 닦고는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시골에서 먹는 새참 맛은 또 하나의 별미다. 동네 분들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다음에 또 사진을 뽑아서 오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척에 있는 능가사가 있는 팔영산 자락에 곱게 단풍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교통편
1)광주 - 고흥 / 15분 간격으로 직행버스 운행/ 2시간 소요(120km)
2)고흥 - 외나로도(신금)/1일 19회 직행버스 운행/50분 소요(35km)
* 문의 - 고흥시외버스터미널(061-835-3772)
도로안내
1) 호남고속도로 주암IC(18번 국도)→벌교(15.27번 국도)→고흥(15번 국도)→나로1대교→내나로도→나로2대교→외나로도
2) 호남고속도로 동순천IC(2번 국도)→벌교(15. 27번 국도)→고흥(15번 국도)→나로1대교
현지숙박
여관 - 프라자모텔(061-835-6599), 동백장(061-835-0100), 진보각(061-833-9929), 하얀노을(061-833-8311)
민박/문의 - 고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30-5224)
고흥군청 홈페이지(http://www.goheun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