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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의 대사건들>은 독일의 건축가 우르술라 무쉘러가 들려주는 건축사 이야기로, 피라미드, 바벨탑, 그리스 신전, 중세 성당과 궁전, 에펠탑 등과 같은 건축사의 기념비적인 '대사건들'이 망라되어 있다.

우선 "제1부 신과 인간 - 고대, 제2부 권력과 인간 - 중세와 르네상스, 제3부 인간과 도시 - 근대와 현대"란 목차가 말해주듯이, 저자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시대구분 속에 녹아 있는 건축사의 시대적 흐름과 특징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대의 건축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상징적 기능을 핵심적으로 수행한 데 반해 (구체적인 사례로 피라미드, 바벨탑, 파르테논 신전, 예루살렘 신전 등을 들 수 있음), 중세의 건축은 기존의 신(神)적 권위가 점차 지상으로 내려와 통치(정치)권력에 복속되는 과정을 묵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끝으로 근대ㆍ현대에 진입한 이후의 건축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그로 인한 인간 소외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건축사의 대사건들>은 이와 같은 건축사의 흐름을 상징적인 '대사건들'을 중심으로 부담없이 일별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제3부에 소개된 '오스망, 파리의 근대화 작업'은 행정수도 이전, 개발논리 등과 맞물려 시사적(時事的) 의의를 제공한다.

<건축, 우리의 자화상>은 임석재 교수(이화여대 건축과)의 한국 사회 진단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상 속에 산재한 건축물들을 텍스트 삼아 온갖 이념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한국 사회를 정밀하게 독해해 내는 비범한 재능을 선보인다.

우리 현실에 가해지는 진보적 학자의 날선 비판은 예리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심장부를 파고든다. 그런데 그 예봉(銳鋒)을 피할 수 있는 건축물은 아마 한국 사회에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고속철 역사, 관공서, 교회, 영화관, 백화점, 모텔, 모델하우스, 아파트, 초고층 아파트, 대형 의류매장, 광장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건물이나 공간 대부분이 비판 목록에 올라 있다.

그의 눈에 비친 고속철 역사는 획일적이고 허세가 심한 하이테크 건축의 전형일 뿐이며, 관공서의 돌계단에서조차 불친절과 권위주의의 흔적을 찾아내고, 교회의 첨탑에선 위선과 허영에 찌든 또다른 권위주의를 읽어낸다.

그의 시야에 포착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는 한국 영화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미 할리우드 상업주의로 전신을 도배한 상태다. 이제 남은 건 이 공간을 지배할 절대 군주의 귀환 뿐.

그밖에 지역사회의 맹주로 군림하며 시민의 사적 영역마저 잠식해가는 백화점들, 복도를 사이에 둔 채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는 군대 막사 구조의 성냥갑 교실 등을 무차별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무차별적 비판이 냉소주의로 읽히지 않는 건,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선 때문일 것이다. 이는 파고다공원의 인간적 면모와 맞은편에 위치한 파고다학원의 영어지상주의를 대비시킨 글('파고다공원과 파고다학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소 성급하고, 주관적이고, 편파적이긴 하지만, 이 책에 대해 촌평하자면, 한마디로 '강추'다. 강력 추천!

건축사의 대사건들 - 피라미드에서 에펠탑까지, 한 권으로 읽는 이야기 건축사

우르술라 무쉘러 지음, 김수은 옮김, 열대림(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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