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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과학문명>
ⓒ 민음사
그는 33세에서 41세까지 4회에 걸쳐 거인(과거는 몇 단계로 나누어진다. 황제 앞에서의 전시(殿試)에 앞서 각 성에서 행하는 시험 합격자)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시험을 쳤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 시험 때는 이미 수사학당의 교장이 된 뒤여서 이른바 전문기술자로서 최고라고 할 직에 있는 사람이 다시 과거시험을 쳤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게 생각된다. 그는 군사기술을 닦았다고 하지만 영국에서 서양 문명에 접하고 때로는 진보적인 의견을 말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엄복(1853~1921)입니다. 중국과학사를 기술한 <중국의 과학문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중국과학사를 서술하고 있는데, 야부우치 교수가 평생을 건 과학사 연구를 결산하여 간결하게 다듬은 개설서입니다.

역사를 다루니 자연스레 많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대개 본받을 만한 훌륭한 인물이지요. 허나 역사 속에는 안타까운 이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늘이 없을 수 없지요. 엄복 역시 어두운 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젊어서 영국에서 서양 문물을 익혔습니다. 귀국 후에 진화론을 소개한 계몽가로 유명합니다. 어린 시절 가난을 이기고자 일체 비용이 제공되는 해군학교에 입학했고 우수 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리니치의 해군대학에서 항해술을 배우게 되는데, 이를 통해 서양의 과학기술을 접하고 폭넓은 근대과학 소양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명적인 인물조차도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매력이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엄복이 과거 공부에 매진할 때는 이미 변법파에 의해 과거제의 폐지가 강력히 주장되고 있던 시기입니다. 강유위를 위시로 존폐가 논의되었던 과거제도는 1905년에 수명을 다하게 되지요. 하지만 엄복은 오랜 시간 과거에 집착했습니다.

물론 단지 제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 시대는 중국이 서양문명과 갈등을 빚으며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시점인데 그런 연유에는 문화적 배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부우치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치가가 되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며 동시에 입신출세와 직결된다는 생각은 엄복의 시대는 물론 그 후에 있어서도 지식인의 일반적 사상이며 또한 사회 전체의 풍조이기도 했다. 서양문명과 심하게 충돌한 청말에서 민국에 걸쳐 뛰어난 과학자가 태어나지 못했던 원인의 하나는 이 점에 있었다.

정치 과잉의 분위기가 과학기술의 성장을 가로막았다는 분석입니다.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사회체계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길로 과학자가 나아갈 길이 매우 좁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복의 비극에는 관료선발시스템과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함수관계도 숨어 있습니다. 수·당 무렵에 시작된 과거제도는 당시 탁월한 인재등용 방법이었습니다. 세습제를 없앰으로써 좋은 집안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고관이 되는 일은 사라집니다. 관리가 되는 길이 일반에 열려 있어 실력있는 자는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누구나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는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습니다.

특히 청말에 이르며 서양근대과학이 밀려들면서 취약성을 드러냅니다. 과거제도는 행정관의 등용에 한정되어 고안되어서 과학자나 기술자도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관료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학생이 외국에서 선진 과학을 배우고 왔다 해도 그들이 국내에서 지도적인 지위를 얻어 지식을 활용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과거제는 특혜를 배제해서 공정성을 보장하는 데 핵심이 있었으므로 예외적인 규정으로 유연성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은 어떨까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세계에서 이공계 출신이 가장 인정받는 나라로 중국을 꼽고 있습니다. 과학기술관료의 천국으로 불립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해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모두 이공계 전공자 들입니다.

오늘날 중국의 급부상에는 이러한 변화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반면 우리는 이공계 기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엄복들이 방황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문가에게 공직을 어떤 절차로 개방할 것인가 하는 쟁점으로도 이어집니다. 공정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야부우치 기요시 지음/전상운 옮김/민음사 펴냄/ 1997년 2월


중국의 과학문명

야부우치 기요시 지음, 전상운 옮김, 사이언스북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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