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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와, 김 아무개님이 취업이 됐어요."
"잘 됐네, 잘 됐어."
"됐어요. 잘 됐어요."
"하루 빨리 일자리를 구하셨으면 했는데 반가운 소식이네요."

오늘 아침 사무실이 한바탕 떠들썩했습니다. 구직자들이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이 분의 경우는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쁨이 배가 됩니다.

그는 올해 나이 59세인 구직자입니다. 그와의 인연은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늦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9월 첫 주, 목요일, 늦은 오후 시간이었습니다.

"저, 실업급여 선생님이 프로그램을 받아보라고 해서… 진즉 신청을 했는데 연락이 안 와서요."
"아, 예, 그러셨어요. 죄송합니다. 워낙 예약이 많이 되어 있어서요."

순간, 얼굴을 바라보는데, 가슴 속에 작은 물방울이 일었습니다. 마음 깊숙이 토해내지 못할 상처를, 쓰리고 아파도 혼자서 삭이고 또 삭이며, 모든 짐을 본인의 죄업으로 여기며 살아 온 사람. 그것은 고통 속에서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리 예약이 밀려 있어도, 이미 다른 구직자들로 채워져 있어도, 참가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프로그램이 시작된 월요일. 다른 구직자보다 20분이나 일찍 왔습니다.

"나이도 많고, 말도 잘 못하고 그러는데 괜찮을란가 모르것네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잘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안심을 시킨 후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들 속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그 상처가 약이 되어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그 상처가 자신을 갉아 먹는 독이 된다고 합니다. 자꾸만 그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프로그램실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 고령자 상담창구
ⓒ 이명숙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오직 절·망·뿐이었습니다. 마음 안에는 온통 캄·캄·한 굴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햇살이 비·치·는 느낌이…."

아니나 다를까 첫 날 프로그램이 끝 날 무렵,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문을 이어나갈 때마다, 자꾸만 목이 메여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절박했던 마음이, 고통의 무게가 아프게 다가와, 참가자 중 일부는 자신의 일처럼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30세가 넘은 중증장애아들을 둔 59세 실직가장. 재취업을 하기에도, 창업을 하기에도 59세는 너무 멀리 와 버린 나이였습니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들, 배움도, 모아 놓은 재산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끔찍해 매일 자살을 생각했다는 그는 5일 동안 구직기술을 습득한 후, 자아성장 프로그램인 취업희망까지 수료했습니다.

실업급여 담당자와 취업지원 담당자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서너 번 면접을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나이제한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9월 말경에 고령자를 채용하겠다는 업체에 알선되어 고령자 담당직업상담원과 동행면접을 하기로 했는데 업체 사정으로 일정이 연기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찾아왔습니다. 담당자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돌아갔습니다. 집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면접 일정이 잡혀 담당자와 함께 업체를 직접 방문해 면접을 보는 동행면접을 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구인업체 측에서도 그의 성실성을 높이 사 채용을 했습니다. 그는 현재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아침, 저녁 씽씽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햇살, 구름, 바람, 나뭇잎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가 마지막 날 소감나누기 시간에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손을 내밀면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혼자서만 끙끙거리며 살았습니다. 육십이 다 되어서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빠져나와, 새 인생을 시작한 김 아무개님께 저희들 모두 응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일터에서 노후를 보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식 때문에, 돈 때문에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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