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고 찢긴 열린우리당이 비상집행위를 구성하고 당을 수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쉬운 일이 아니기에 굳이 비난할 생각은 별로 없다. 이 나라의 집권여당이며 원내 제1당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DJ와의 대화 내용
비상집행위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서 인사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은 그리 탓할 일은 아닌 듯하다. 국가원로에게 집권여당의 지도부가 그럴 법한 일이다. 그렇게 조언을 구하고 인사할 국가원로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 정치의 불행한 단면일 것이기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찾아간 자리였을 것이다. 달리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 엄청난 잘못은 아니기 때문에 탓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모두에게 완전한 명분이 서는 일만을 하면서 정치를 하기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되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달리 시비할 필요가 없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여러 가지 충고와 덕담을 건넨 것이다. 단지 충고만을 하지도 않았으며, 듣기 좋은 덕담만 하지도 않았다. 역시 그다운 발언들을 했고 대체로 찾아갔던 여권의 지도부가 만족해하는 수준의 대화가 오고 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원들이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여당답지 못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통령도 노력해야 하지만 여당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통적인 지지층을 결집해야 한다", "여러분이 나의 정치적 계승자이다" 이런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네 가지 중에 세 가지는 집권여당에 대한 충고의 성격을 가지는 말이다. 마지막 한마디는 찾아간 정치인들에게 건넨 덕담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잘못하고 있는 일에 대한 충고를 하면서 덕담이 한마디 더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인 해석일 것이라 여겨진다.
합당론자들의 아전인수
충고의 성격을 가진 발언은 그리 깊이 생각지 않고 덕담에 대해서는 매우 반색을 하는 여당의 분위기가 매우 처량해 보인다. 여당답지 못하다는 지적이나 당신들은 뭘 하고 대통령을 원망하느냐는 지적에는 반응하지 않고 마치 자신들이 그의 정치적 적자인 것처럼 확대해석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민주당과의 합당론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발언으로 침소봉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설혹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자신과 정치를 함께 하던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니 같이 합쳐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렇게 노골적인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것으로 보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지층을 결집하라는 것을 민주당과의 합당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그것은 지역 구도를 복원하라는 의미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런 의도로 발언했을 것이라고 믿어지지는 않지만 그런 의도라 하더라도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생각이다. 단지 창당의 명분과 초심으로 돌아가서 지지자들이 바라는 개혁을 완수하고 옳은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고 바람직하다.
문제는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것도 상향식 당내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것도 전혀 관심 밖이면서 오로지 정치공학, 선거공학적인 행보에 여념이 없는 정치꾼들이 오락가락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훼손하여 국민은 물론 열혈지지자인 당원들마저 돌려 세우고 있다는 문제이다. 전통적 지지자를 묶어 내는 작업은 손해를 감수하고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명분도 논리적 수긍도 되지 않는 합당론 등을 주장하는 부류들이 김 전 대통령의 발언마저 그런 자신들의 주장에 끌어들이는 아전인수를 시도하는 것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다. 세월이 흘러도 정치꾼들의 생각은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다음 선거에만 집중될 뿐이라는 변함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열린우리당의 문제는 스스로 거울을 보는데서 찾고 고쳐야 한다
창당 이후부터 꾸준히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온 열린우리당의 헛발질을 되짚어보는 일은 그들의 모습을 좀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의미있는 것이다. 당권을 잡고 나서 자신을 추종자들을 열심히 심으려고 노력한 당권파의 모습은 화급한 총선을 준비하기 위하여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분위기였지만 어떤 당원도 그냥 옳다고 인정한 일은 아닐 듯하다.
틈만 나면 당헌당규를 뜯어 고쳐서 기간당원들의 권한을 축소하고 현역정치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한 잘못도 크다. 당원들까지 당을 외면하는 핵심층의 이탈을 촉매한 시대착오였다. 그런 짓은 여전히 부지런히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총선에서 과반수를 확보한 후 원구성 협상을 하면서 법사위원장을 한나라당에 넘겨준 잘못은 두고두고 개혁입법의 발목을 잡아왔고 여전히 그렇게 개혁을 막아서는 장벽이 되고 있다. 양보할 것이 따로 있는 일이다. 거기에 원내전략의 부재를 들어내면서 지난 연말의 4대개혁입법에 실패한 것도 핵심지지층의 이탈을 낳았다.
올해 들어서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헌당규에 경과규정을 다시 도입하고 창당시 약속한 기간당원제에 대하여 훼손을 또 다시 가했고, 경과규정에 맞추어 정치인과 정치집단이 동원한 당원과 대의원들에 의하여 상품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지도부를 구성한 것은 심대한 지지율의 하락을 초래한 일이다. 2005년 4월 2일에 이미 열린우리당의 몰락은 예고된 것 같다.
과정에서 민주당과의 합당론은 민주당을 정치전면에 부활시키는 찬란한 헛발질이었다. 곧 이어 4ㆍ30 재보선에서 23대0이라는 이순신 스코어로 참패를 당한다. 후보의 돈봉투 사건이나 당의장의 포크레인 삽질유세에 건교위원장 남발유세 등 국민이 지지하고 싶어도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과반의석도 무너지고 여당의 정책적 차별성이나 개혁의지는 점점 실종되고 한나라당과 다른 것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쇄신노력에 비하여 훨씬 반개혁적인 모습으로 보여지기 시작하였다. 이쯤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들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연정론이 그것이다. 한나라당은 민생을 도탄에 빠뜨릴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입만 열면 오로지 민생을 외치지만 열린우리당과 대통령은 근본적인 정치의 발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지지율의 하락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고 본다.
또 다시 10ㆍ26재선에서 4대0의 완패를 당하고 여당은 중구난방으로 이해득실을 계산하기 바빴다. 대통령을 원망하는 자가 부지기수이고, 엉뚱한 기간당원제를 두들겨 패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다시 민주당과의 통합론으로 지역구도라도 복원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도 자못 바쁘다.
이것이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본 열린우리당의 자기모습일 것이다. 겸허히 자신들의 잘못을 먼저 진지하게 반성하고 스스로 돌이켜 정도로 돌아오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싫다는 민주당을 졸졸 쫓아다니며 스토킹한다고 그들이 환영할 리가 만무하다. 스스로 국민의 지지를 어느 선까지 회복하지 못하면 영영 합당도 될 리가 없으며 민주당이 응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있는데 일방적인 구애를 되풀이하면 점점 더 지겨워질 것이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추한 모습을 화장으로 감춘 다음에 거부감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접근하는 것이 거절당할 가능성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다.
열린우리당은 스스로를 거울에 비춰보고 추한 얼굴과 보기 싫게 살 오른 몸매를 가다듬은 후에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이 옳다. 바라는 일이라고 모두 되는 것이 아니고 정치는 더욱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들이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 서프라이즈, 외부 개인블러그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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