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남양유업 홈페이지

4년째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 그의 대리점에는 주문하지 않았는데 본사 지점에서 떠넘긴 요구르트, 우유가 박스째 쌓여있다.

이들 제품은 운이 좋아야 유통기한 내 동네 슈퍼마켓 등 거래처에 팔린다. 현재 거래처에 공급해야할 물량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추가로 물건을 받게 되면 마땅히 팔 곳이 없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이려면 무리하게 처분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원가 이하로 팔거나 아예 공짜 행사 상품용으로 거저 줘야한다. 그마저도 안돼 유통기간이 지나면 버리는 수밖에 없다. 대리점을 운영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된 일상이다.

그의 거래 장부를 들여다봤다. 11월 2일, 발효유인 '이오하이'와 '불가리스프라임'(사과맛)은 주문을 내지 않았는데도 각각 30박스와 20박스가 지점으로부터 강제 할당됐다. 지난 6월 출시된 신제품 혈압발효유도 일방적으로 1박스를 내려보냈다. 특히 잘 팔리지 않는 '과수원사과'와 '진콩두유' 10박스도 마찬가지였다.

11월 3일은 더 심했다. 이날은 기존에 받아놓은 물량을 소화하기도 벅차 아예 모든 제품에 대해 주문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지점 제품 배달 차량은 어김없이 A씨의 대리점에 제품들을 잔뜩 부려놓고 갔다. 이오하이 20박스, 불가리스프라임 40박스, 아인슈타인GT 4박스. 기타 과일맛을 낸 우유제품 5박스. 여기에 유제품도 아닌 홍삼음료 6박스 등도 포함됐다.

그 다음날도 상황은 마찬가지. 지난 10월 28일에는 각 제품을 합쳐 총 25박스를 달라고 주문을 냈지만 본사에서는 211박스를 보내왔다. 이런 경우는 이날 뿐 아니라 다른 날도 부지기수였다.

대리점에 쌓여있는 발효유 제품 박스. 대리점들은 본사 지점에서 제품을 주문량 이상으로 가져올 경우 냉장보관소에 자리가 없어 이렇게 상온에 보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리점에 쌓여있는 발효유 제품 박스. 대리점들은 본사 지점에서 제품을 주문량 이상으로 가져올 경우 냉장보관소에 자리가 없어 이렇게 상온에 보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25박스 주문했더니 실제 보낸 양은 211박스

A씨는 "강제로 떠넘기는 물량이 전체 매출의 20% 가량 된다고 보면 된다"며 "여름에는 밀려오는 제품들로 냉장고가 가득차 냉장보관을 못하고 상온에 방치하다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루 평균 20여만 원, 한 달로 치면 대략 600만 원 어치의 물건을 강제로 떠 안아야하는 것이 대리점 사장들의 숙명이다. 많을 때는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어치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 제품들이 팔리든 안팔리든 결제대금은 월말에 고스란히 대리점에 청구된다.

8년째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는 K씨. 그가 지난 2월 한 달 동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한 대가로 손에 쥔 돈은 단돈 43만 원이었다. 순매출 4800만원에 630만원 가량을 이익으로 남겼지만 본사에서 떠넘긴 제품들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본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가게세와 차량유지비, 인건비 등을 빼고 나니 한 달 수입이 50만 원에도 못미친 것이다. 겨울이 유제품 비수기라는 계절적 요인을 감안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었다.

K씨는 "떠넘긴 제품들을 팔 곳이 없어 직접 차를 몰고 시장이나 직장인 밀집지역에 가서 3개 1000원하는 식으로 팔 수밖에 없었다"며 "유통기한이 지나면 버려야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10원이라도 더 건지려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J씨는 대리점을 시작한지 3년만에 사업을 접었다.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J씨는 대리점이 월말 납품 대금 결제도 제 때 못하는 등 어려워지자 본사 지점에 정상화될 때까지 만이라도 감당할 만큼만 제품을 받게 해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J씨는 "대금 결제 못한다며 대리점 포기각서를 쓰라고 하는 동안에도, 또 대리점을 인수인계하는 순간까지도 제품 떠넘기기는 계속됐다"며 "대리점 경영상태가 좀 나아질 때까지 3개월만 봐달라고 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품이 쌓이니까 받을 양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주문량을 줄여도 봤지만 그만큼 밀려오는 물량이 늘어난다"며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해서 판매 목표량을 달성하면 그 다음 해는 작년 판매량을 기준으로 목표를 늘려잡아 '밀어내기' 물량을 그만큼 더 늘린다"면서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리점 사장들은 본사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고 했다. 신제품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제품 떠넘기기가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품이 인기를 끌어 잘 팔려나가면 괜찮지만 반대의 경우 개당 가격이 기존보다 높은 신제품은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본사 매출 9000억원 바라보는데 대리점은 곪아 터지기 직전"

또 이들을 더욱 황당하게 하는 것은 유제품을 취급하는 대리점인데도 음료까지 떠넘긴다는 점이다. 특히 음료가 잘 팔리지 않는 겨울이 되면 정도가 더 심해진다.

수도권에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S씨는 "음료를 취급하는 대리점이 따로 있는데도 홍삼음료, 과일주스 등까지 유제품 대리점에 떠밀고 있다"며 "음료는 단가도 높아 이걸 팔지 못하면 손해도 그만큼 더 커져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대리점을 시작한지 3년쯤 되면 대부분 경영상의 한계에 부딪히고 5년이 넘어가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 대리점 사장들의 하소연이다. 특히 대형할인마트 납품이 없어 월 매출 3000만 원 이하의 소규모 대리점일수록 어려움은 커진다. 때문에 대리점 운영만으로는 생활이 안돼 다른 일을 병행하는 이들도 많다.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의 10월28일자 거래장부. 각 제품들 25박스를 주문했지만 211박스가 지점으로부터 내려왔다.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의 10월28일자 거래장부. 각 제품들 25박스를 주문했지만 211박스가 지점으로부터 내려왔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반면 대리점들은 어려움을 겪고 폐업을 해도 남양유업 본사는 매출 증대라는 달콤한 열매를 거둘 뿐 피해가 없다. 대리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의 연 매출액은 지난 2001년 6660억 원에서 올해는 9000억 원을 바라보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리점들은 이 매출액 속에는 본사에서 무조건 목표를 채우기 위해 떠민 제품들을 자신들이 팔 때 본 손실들이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며 거품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대리점들이 새로운 거래처를 적극 발굴해서 판매량을 늘리면 문제는 해결된다. 대리점 사장들도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그러고 싶지만 각 지역 대리점들의 영업 구역이 정해져 있고 갈수록 대형 할인점들이 늘어 동네 슈퍼마켓 등 점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대리점 입장에서는 현상 유지만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S씨는 "언론 등에서 남양유업 매출이 1조를 바라본다느니, 무차입 경영에 사내 유보율이 1만%에 이르는 알짜기업이라는 등 칭찬 일색이지만 그 밑에 있는 대리점들은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며 "나도 당장 그만 두고 싶지만 나이 50에 새로운 일거리 찾기도 쉽지 않아 이러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남양유업 측은 대리점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대리점들에 매출 목표를 주면서 판매를 촉진하는 것은 정당한 영업활동이라는 것이다. 또 업계에서 이러한 영업방식은 관행이라는 입장이다.

남양유업 "매출목표에 따른 판매촉진은 정당한 영업활동"

남양유업 관계자는 "어떤 제품이든 매출 목표가 있게 마련"이라며 "대리점에 팔 수 있을 만큼만 팔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영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 한 달에 1000만 원을 파는 대리점이 있다고 하면 앞으로는 1200만 원 어치 팔아보라고 권유할 수 있지 않느냐"며 "목표치를 무리하게 높이는 일은 없고 이 경우 대리점의 판매 촉진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리점들과 본사간 공방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제품을 주문량보다 많이 공급하는 것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인지 불공정 행위인지는 조사에 들어가봐야 안다는 것.

최무진 가맹사업거래과 과장은 "제품을 강제로 떠 넘겼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온다면 이러한 행위는 거래상 지위남용에 해당한다"며 "대리점들의 제소가 있을 경우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리점들은 제품 떠넘기기가 자신들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밀어내기 물량이 많아지면 냉동보관소 용량에 한계가 있어 실온에 보관할 수밖에 없다. 그럼 실온에서 유통기한 될 때까지 방치되는 것이다. 제품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커진다. 또 그날 들어온 물량을 그날 바로 거래처에 공급하려고 해도 그전에 받아놓은 물량이 있기 때문에 먼저 들어온 것부터 나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도 신선한 제품을 살 권리가 있는데 피해를 보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