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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앞으로 몸매 관리 잘해라, 여자가 애 낳고 나서 몸이 펑퍼짐해지면 남자가 바람나는 거야. 너 남편은 안 그럴 것 같지? 밖에 나가봐라. 늘씬한 애들 쌔고 쌨어. 근데 너가 펑퍼짐해 있으면 남편한테 예쁘고 늘씬한 애들 하고 너가 비교가 되겠니 안되겠니? 열심히 살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순식간에 '뚱뚱하고 추한 존재'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었다.
임신과 출산 기간 내내 나는 사회가 내게 보내는 굴곡된 시선에 끝없이 괴로워했다. 사회는 여자에게 '애를 낳아야만'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끊임없이 애 낳기를 종용한 뒤 애를 낳고 나면 낳기가 무섭게 펑퍼짐한 몸매에 대해 매서운 경고를 날린다.
애를 보느라 헬스나 다이어트는커녕 집밖으로 나갈 틈조차 없는 여인들은 애를 낳고 난 뒤 변해버린 몸에 대한 놀람과 부끄러움을 늘 가슴에 지니고 다니며 스스로 열등감을 갖게 된다.
한꺼번에 밀려오는 육아에 대한 거대한 책임감과 자신감 상실,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 것만 같은 소외감. 산후우울증은 필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냉정한 시선으로 내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회사에 복귀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였다. 아이는 어느 정도 자랐고, 나는 육아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육아에 대한 책임감과 두려움에서 왔던 충격도 어느 정도 가셔 있었고 나는 찬찬히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굉장히 아름다운 일을 한 것이었다. 나는 한 생명을 내 안에 품어 고이 길러냈고 커다란 고통과 함께 그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내 배에 두텁게 형성된 지방층은 아이를 충격에서 보호했고, 아이는 탄탄한 뱃살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났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키우기'를 다소 실수를 하긴 했지만 결국 큰 탈 없이 해냈고, 지금도 그 소중한 작업을 해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거리에 나가면 임산부와 어린 아기를 아기띠에 매고 다니는 여성들의 모습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옛날에는 부산스럽게만, 어떤 땐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존재가 이제는 고귀해 보였다. 오랜 세월동안 중심을 형성해온 남자들의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키워온 여인들의 존재가, 그들의 숨결이 생생하게 귓가에 다가오는 듯했다. 그렇다, 여타의 어떤 일이 생명을 키우는 일만큼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나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비로소 사회의 본모습을 보았다. 굴곡된 시선을 보내는 사회를 통해 나를 만났다. 한 번도 내 시선으로 보아온 적이 없었던 나. 반쯤은 남성의 시선으로 나를 재단하고 비하했던 내가 비로소 나 자신의 시선을 갖게 된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겪게 될 많은 여인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을 것이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굉장히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다고. 사회가 보내는 많은 왜곡된 시선들에서 주체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당신이 만들고 있는 생명을 집중해서 응시할 때, 당신을 타자로 만드는 수많은 왜곡된 시선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