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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희 집은 '프라하의 여인'과 전쟁 중입니다. 누가 더 드라마에 몰입하는지 경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아내가 '프라하의 여인' 왕 팬이고 딸내미는 새끼 팬이고 아들은 어중이 떠중이고 저는 분위기 맞추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놈입니다. 저는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내와 딸내미와 아들이 '프라하의 여인'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옆에서 딸내미 교복을 다림질하느라 바쁩니다. 저는 군대에서 배운 다림질이 내 삶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요즈음 군대문제 때문에 말들이 많지만 저는 군대에서 배운 것들이 많습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집안일 중에서 제가 하는 것은 거의 군대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식기당번만 11개월을 할 정도로 재수가 지독하게도 없었던 놈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거지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도 설거지 하느라 손에는 '주부습진'이 걸려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투정도 해봅니다. 앞으로 고무장갑을 사주지 않으면 절대로 설거지를 하지 않겠다고 태업도 벌여보지만 아내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제가 미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청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집안청소 전담맨입니다. 간혹 아내도 집청소를 하지만 말입니다. 아내가 집안 청소를 할 때면 큰 잔소리 때문에 장롱 위에 있는 먼지가 다 날아갈 정도입니다. 제가 청소를 하면 제대로 청소가 되지 않는다는 둥 청소를 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는 둥 잔소리가 진공청소기 소리보다 큽니다.
그래도 내게도 자존심이 있어서 화장실 청소만큼은 아내 몫으로 남겨놓았습니다. 물론 언제 화장실 청소도 제 몫이 될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그리도 빨래는 솔직히 아내보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빨래도 군대에서 배웠습니다. 군복과 양말을 빨다가 이젠 선수가 되었습니다. 아들 양말은 어떻게 빨아야 검은 때가 빨리 빠지는지 아내와 딸내미 속옷은 어떻게 빨래를 해야 천이 상하지 않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내의 마음을 깨끗하게 빤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면 빨래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청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일부러 땀을 내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다니게 됩니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프라하의 여인'이 시작되면 우리집은 정적 속에서 TV 소리만 윙윙거립니다 윤재희와 최상혁, 지영우의 목소리만이 집안을 장악합니다. 웃다가 심각해지고 심각해지다가 다시 웃는 아내와 딸내미의 표정을 힐끗힐끗 쳐다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초딩' 3학년인 아들은 옆에 앉아서 알지도 못하는 대화를 열심히 듣느라 제 딴에는 심각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아들이 "아빠! 대통령이 저렇게 할 일이 없어요?"하고 말해 온 식구들을 요절복통하게 만듭니다. 진짜 대통령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진아! 너도 대통령이 되는 것이 어떻겠니?"
"아니 저는 대통령이 안 될래요. 할 일이 별루 없어서 심심할 것 같아요."
할 말을 잊고 아들을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라하의 여인'이여! 대통령의 일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세요. 우리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도록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