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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매장에 걸려있는 할로윈 분장용 소품과 의상들.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미국에 유입한 '죽은자들의 날' 할로윈은 대중들의 삶의 일부이자 거대한 상업문화의 하나로 탈바꿈했다.
미국의 매장에 걸려있는 할로윈 분장용 소품과 의상들.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미국에 유입한 '죽은자들의 날' 할로윈은 대중들의 삶의 일부이자 거대한 상업문화의 하나로 탈바꿈했다. ⓒ 강인규
10월 말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할로윈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다. 여름이 지나기 무섭게 온갖 매장에 걸리기 시작했던 마녀 모자며, 해골인형이며, 고무로 된 잘린 팔이 이제는 '반액 할인' 딱지가 붙은 채 매장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다.

게으른 가족들의 집 앞에는 으스스한 할로윈 장식이 여전히 밤을 맞고 있고, 심지어 시들어 일그러져가는 호박등을 문가에서 치우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그러나 그 열정의 흔적들은 미련보다는 무관심을 상징하듯, 아무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할로윈의 열기로부터 벗어난 이 순간은 그 날이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되새기기에 더 없이 적합한 시기다. 적어도 그 행사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과거형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할로윈을 위해서 미국인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분장용 의상을 구입했으며, 한 사람당 사용한 금액은 40불에 달한다.

알뜰한 미국인들이 '거액'을 주고 구입한 의상의 신세는 반쯤 허물어져 내동댕이쳐진 호박등의 팔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올해 의상을 내년에 다시 입는 일은 자신이 얼마나 따분한 사람인지를 홍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무감한 사람이라면 아예 할로윈 의상을 구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할로윈 밤에 분장을 한 채 거리를 거니는 학생들.
할로윈 밤에 분장을 한 채 거리를 거니는 학생들. ⓒ 강인규
사탕, 맥주, 사랑, 그리고 돈다발

내년이면 다시 여름 기운이 가시기가 무섭게 매장에 갖가지 의상이 진열대에 걸리기 시작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창의력을 발휘해서 '남들이 잘 입지 않을' 개성 있는 의상을 고를 것이다. 물론 그 '독특한 의상'은 그 해에 거리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품목이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모두 남만큼은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 기업들이 대량생산된 분장의상으로 한 해에 벌어들인 돈은 30억불이 넘는다.

미국인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할로윈 의상에 대해 제법 진지하다. 미국인들 절반 이상의 할로윈을 위한 의상을 구입하며, 일인당 평균 4만원 이상의 비용을 투자한다.
미국인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할로윈 의상에 대해 제법 진지하다. 미국인들 절반 이상의 할로윈을 위한 의상을 구입하며, 일인당 평균 4만원 이상의 비용을 투자한다. ⓒ 강인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미국에 들여온 할로윈 행사는 이처럼 오늘날 미국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청년들에게는 맥주를, 젊은 여성에게는 과감한 의상을, 그리고 노인들에게는 치기 어린 장난을, 그리고 기업가에게는 돈다발이 허락되는 날이 어찌 인기를 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날에 모두가 즐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기독교는 오래 전부터 이 '이교도의 날'과 미묘한 대립을 보여 왔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깨어난다고 믿는 이 '망자의 날'에 악령을 쫓기 위해 기괴한 분장을 하는 옛 켈트족의 풍습은 삶과 죽음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미국인이 집에 할로윈 의상을 걸어놓고 있고, 그중 적지 않은 수가 설교시간에 할로윈 파티에 무엇을 입고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교회가 이 날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 내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할로윈 행사는 종교적 의미를 오래 전에 벗어나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유럽의 무, 미국에서 호박이 되다

아일랜드에서 수입된 할로윈은 미국에서 상업적 대중문화로 재생산되어 다시 전 세계로 역수출되고 있다. 미국은 문화를 상품으로 재생산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사회다. 독일 이민자가 만들기 시작한 햄버거를 맥도널드로, 이탈리아의 피자와 에스프레소를 피자헛과 스타벅스로 변모시킨 미국은 할로윈의 상징을 지극히 미국적인 '호박등'으로 바꾸어 놓았다.

할로윈의 상징이 된 호박등. 무서운 얼굴을 새기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나, 최근에는 우스운 표정이나 '예술적인' 조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할로윈의 상징이 된 호박등. 무서운 얼굴을 새기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나, 최근에는 우스운 표정이나 '예술적인' 조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 ⓒ 강인규
기괴한 표정으로 밤을 비추는 호박등(Jack O’Lantern)은 할로윈의 '공식상표'가 되었지만, 정작 이 날의 기원을 제공한 아일랜드와 영국에서는 호박 대신 순무를 사용했었다.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미국 원주민들이 제공한 그 '낯선 야채'야말로 안을 파내고 안에 초를 넣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호박을 이리 저리 굴려보던 그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후손은 이제 수저로 속을 파 낼 필요도 없고, 칼로 눈과 입을 새길 필요도 없는 플라스틱 호박등을 대량생산하고 있다.

할로윈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일상의 질서와 규범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카니발'로 기능한다. 갖가지 의상을 갖추어 입은 학생들이 시내의 거리를 누비고 있다.
할로윈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일상의 질서와 규범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카니발'로 기능한다. 갖가지 의상을 갖추어 입은 학생들이 시내의 거리를 누비고 있다. ⓒ 강인규
할로윈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대학가에서 흔히 들려오는 말이 있다. "뭘 입고 갈 거니?(What are you going as?)" 이 날은 한 해 동안 예의바른 삶을 살아 온 미국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해방구를 제공한다. 그 추운 날 속옷 하나만 입고 걸어 다녀도 아무도 나무랄 사람이 없으며 (물론, 이 날이 아니어도 남의 옷차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없다) 따분한 갭과 리바이스를 벗어던지고 과감히 창의적으로 대량생산된 의상을 입는 날이기 때문이다.

위스콘신의 매디슨처럼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문화적으로 분방한 대학도시에서는 젊은이들의 '창의성'이 아주 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올해 이 날에는 전국에서 원정 나온 이들을 포함해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갖가지 의상을 걸치고 모여들었다. 위스콘신대학 총장이 전국 대학에 '이 날을 지역행사로 치를 수 있도록 방문을 삼가 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냈으나 별 효력이 없었다.

죽은 자를 기억하고 악령을 피하기 쫓기 위해서 입기 시작한 기괴한 의상은 이제 상업문화와 접목되었다. 이제 미국인들은 흡혈귀나 프랑켄슈타인 뿐 아니라,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의 주인공으로 분장한다.
죽은 자를 기억하고 악령을 피하기 쫓기 위해서 입기 시작한 기괴한 의상은 이제 상업문화와 접목되었다. 이제 미국인들은 흡혈귀나 프랑켄슈타인 뿐 아니라,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의 주인공으로 분장한다. ⓒ 강인규
수백 명의 경찰병력이 '진행요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이틀간에 걸친 대규모 행사가 벌어졌다. 행사가 마무리되는 일요일 새벽 두 시, 일부 참가자들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 달라는 경찰들의 요구에 '우리는 최루탄을 원한다'는 구호로 화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 중 일부는 최루탄 가루를 몸에 묻힌 채 집으로 돌아갔다.

할로윈에 변화를 꾀하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슈퍼맨으로 분장한 개의 모습.
할로윈에 변화를 꾀하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슈퍼맨으로 분장한 개의 모습. ⓒ 강인규
'망자의 날'에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다

ⓒ 강인규
한국에서도 점차 미국의 할로윈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무비판적인 문화모방, 혹은 상업적 외피 수입이라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그 '흉내'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뜯어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그 날이 가진 본래의 뜻과 기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따른다면 그 '무의미한 행동'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제법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얻게 될 것이다.

마녀 모자를 쓰거나 얼굴에 가짜 피를 칠하지 않고도 '할로윈의 지혜'를 배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것은 결국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는 것이다. 성자도 말했거니와, 잔치보다 장례식에서 인생의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다.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시점에서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지니.
#Q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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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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