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시인 로니>를 읽으면서 시가 동화로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시는 이제, 소설이 되고 전기가 될 수 있으며 수필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책을 읽기 전에 분명히 이 책의 저자가 어른이란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읽다가 그만 잊어 버렸다. 책을 덮을 때쯤엔 '저자가 어릴 적에 써 놓은 거라고 했던가'하고 다시 뒤적였다.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나이를 잊게 하고 주인공 로니의 심정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시집이다.
시는 본디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을 소재로 한다고 알고 있었다. 가상인물의 경험과 감성을 표현한 것으로 따지자면 이 시집은 동화에 가깝다. 또 그것이 일정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으며 결말에 이른다는 것에서도 일반적인 시집과는 다르다. 그런데 시로 한 권의 동화을 묶어냈다. 아주 근사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었다.
어른인 저자가 있지도 않은 어린 아이의 아픔을 읽어내어,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해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았다. 저자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전업 작가가 되기 전까지 뉴욕에서 고아들과 가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극치료사로서 활동했다고 한다. 추측컨대, 아마도 연극치료사로 활동시절 아이들과의 만남이 <지붕 위의 시인 로니>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시집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로니는 이제 겨우 11살이다. 로니가 7살이고 동생 릴리가 4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이 화재로 돌아가셨다. 릴리는 입양되어 새 엄마와 살고 로니는 에드나 아줌마와 산다. 로니는 일주일에 한번 동생 릴리를 만나는 날이 가장 행복하다. 이런 것 말고도 이 시집은 로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로니가 부모님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동생 릴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엄마
..................
인동운모 파우더라는 게 있다.
엄마에게서 그런 냄새가 났다.
사실 인동은 꽃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엄마 냄새가 나는 그 파우더뿐.
가끔 그리움 때문에 정말 아파오면
난 백화점으로 달려간다. 문 앞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내가 뭔가 훔쳐내기라도 할까봐 주위를 맴돈다.
난 화장품 코너 아가씨에게 혹시
그 파우더가 있는지 묻는다.
네, 라는 대답이 들려오면 난 말한다.
제가 찾는 게 맞는지 향기 좀 맡아봐도 될까요?
화장품 판매원은 눈알을 굴리며 나를 보지만
그래도 허락해 준다.
그러면 그 몇 초 동안
다시 엄마가 살아와,
엄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모두
떠올라,
...............
릴리
가끔씩 난 릴리의 머리를 빗질해주었다.
대부분 땋은 머리였지만
하나로 질끈 묶을 때도 있었다.
릴리는 때때로 울곤 했어.
눈물이 요만큼도 안 나오는 울음.
제법 큰 속임수였지.
백만 달러를 준대도 난
릴리의 머리를 상하게 하지 않았을 거야.
가끔씩
오늘이나 어제처럼, 아니면 내일이라도
내 마음 속을 가득 메우는 건
엄마와 릴리뿐.
머리카락과 인동운모 파우더.'
로니의 추억의 편린들은 시 습작과 함께 한다. 재빨리 사라지는 연기 기둥 같은 생각들을 잡아 시를 쓰고 행을 나누고 세부묘사를 해본다. 일본의 시 형식 중 하나인 하이쿠를 배우고 일정한 각운체계인 소네트를 배운다. 랭스턴 휴즈나 리처드 라이트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고 감정표현 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로니는 시로서 친구들의 아픔을 읽어낸다. 에드나 아줌마의 사랑을 알려주며 로드니 형의 든든한 팔이 커다란 나무 그늘과 같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때론 엄마의 웃음소리가 되고 노래 소리가 된다. 시는 춤을 추고 농구공이 날아 가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로니는 자신이 고아가 되고 동생 릴리와 같이 살 수 없는 것까지도 뜻대로 하시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성경이 서간시라는 걸 알려 준다. 그렇게 로니는 시와 함께 성장한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런 아픔이 자기 비하나 원망이 아니라 시로 표현될 때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로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꼭 시가 아니더라도 하고자 하는 것(운동, 음악, 미술 따위)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간다면, 누구든 성숙된 인격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붕 위의 시인 로니
재클린 우드슨 지음 / 다른 펴냄
값: 8,500원
쪽: 164
권장대상 : 초등 3학년 이상 시가 뭔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화책 처럼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시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