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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야, 늦겠다."
"다 됐다. 가자."

아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가방을 어깨에 둘러멥니다. 가방 뒷면에 ○○○교회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이들이 현관문 앞에서 잘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합니다. 아내가 싱긋 웃습니다. 아이들의 옷매무새를 만져줍니다. 아내가 아이들 손에 헌금하라며 500원씩 손에 쥐어줍니다. 아이들이 집을 나섭니다. 아내가 혼잣소리로 말합니다.

"어떻게 된 애들이 일요일에 가장 빨리 일어나요. 교회 가는 게 그리 좋은가?"

우리 아이들은 교회에 다닙니다. 교회에 가면 재미가 있답니다. 친구들도 많고 여러 가지 놀이도 한답니다. 간식으로 과자도 주는 모양입니다. 덕분에 일요일 오전만큼은 저도 편합니다. 아내나 저나 아이들 눈치 보지 않고 푹 쉴 수 있으니까요.

교회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네요. 며칠 전이었습니다. 막 퇴근하려는데 사무실로 아는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분이 불쑥 무언가를 제 손에 쥐어줍니다. 포장이 예쁘게 되었는데 제법 묵직합니다. 저는 황급히 물건을 물리쳤습니다.

▲ 아이의 성경책입니다
ⓒ 박희우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성경책입니다."
"성경책이라고요?"
"계장님께서 기독교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한 권 가져왔습니다."

내가 기독교에 관심이 많다? 저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기독교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도 고등학교 다닐 때는 교회를 나갔습니다.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기독교재단이었거든요. 그때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학과목에 성경시간이 있었거든요. 교회 목사님의 '교회출석 확인서'를 제출해야만 성경점수가 잘 나왔습니다.

지금 저는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저는 지금도 웬만한 찬송가 정도는 부를 줄 압니다. 마음이 울적하다든지 외로울 때는 찬송가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옵니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저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도시가 무척 힘들었나 봅니다. 예배당의 종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더없이 포근해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계장님, 생각나시면 저희 교회에 들러주십시오."

그분이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저는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었습니다. 마치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산 밑에 있는 교회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양철 지붕에 판자로 벽을 둘렀습니다. 작고 초라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젊은 목사님의 목소리만은 우렁찹니다.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목사님의 목소리가 그렇게 생생함에도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선뜻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제 마음이 너무 메말랐을까요.

저는 퇴근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몇 걸음 걷기조차 힘듭니다. 금방이라도 일을 치를 것만 같습니다. 저는 가까스로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왔습니다. 엘리베이터는 25층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습니다. 내려오는 속도가 엄청 느립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3층입니다. 저는 다시 23층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저는 그 시간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상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책이 문제입니다. 화장실까지 성경책을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마침 제 아파트 사물함이 보입니다. 저는 그곳에 성경책을 넣었습니다. 책 모서리가 조금 삐져나왔습니다. 포장이 알록달록한 게 제법 그럴 듯한 상품처럼 보입니다.

바로 그게 문제였습니다. 제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이미 사물함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슨 귀중품인 줄 알고 누군가가 성경책을 가져간 것입니다. 허탈했습니다. 세상에 성경책을 도둑맞은 사람이 저말고 또 있을까요? 도둑 맞은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훔쳐간 사람 마음은 어떨까요. 죄책감에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을까요.

아이들이 없는 집은 조용합니다. 아내가 설거지를 끝내고 커피를 내옵니다. 저는 아내한테 성경책 도둑맞은 얘기를 합니다. 아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지 "성경책 훔쳐간 그분이 교회에 나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합니다.

▲ 저희 가족입니다
ⓒ 박희우
아내는 독실한 불교신자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교회에 나가는 걸 전혀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눈치입니다. 어떤 종교든 믿으면 좋다는 게 아내의 생각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종교든 서로 존중해주면 똑같이 행복합니다. 이게 바로 상생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오늘 도둑맞은 성경책 대신 아이들의 성경책을 읽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10대의 기억들이 소록소록 되살아났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돌아오면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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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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