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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마치고 나오는 아들 영정 앞에 오열하는 아버지(74·왼쪽). 지난 11일 저녁 정용품씨는 정부의 농촌 정책과 쌀 문제 등을 지적한 유서 한 장을 남기고 마을 회관에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3일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마치고 나오는 아들 영정 앞에 오열하는 아버지(74·왼쪽). 지난 11일 저녁 정용품씨는 정부의 농촌 정책과 쌀 문제 등을 지적한 유서 한 장을 남기고 마을 회관에서 목숨을 끊었다. ⓒ 광주드림 김태성

고 정용품씨의 유서
고 정용품씨의 유서
정부 농업 정책 등을 비판하며 자살한 정용품씨 유가족들은 정씨가 유서에서 지적한 것들을 되새겨 정부의 정책으로 실현되기를 바랐다.

13일 오후 정씨의 고향인 전남 담양군 남면 인암리 토옥마을에서 만난 정씨의 동생 정OO(28)씨는 "처음 소식을 접하고 담담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동생 정씨는 "자신이 이뤄내고 싶은 꿈과 현실에 괴리가 있었던 것 같다"며 형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정부에 "농민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밝힌 유서를 정확하게, 한 자 한 자 되새김하면서 읽어보기를 바란다"면서 "정부는 농업과 농촌문제를 생각할 때 후회없는 결론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된 형에 대해 "고향으로 온 후 농민들의 파수꾼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며 "최근에는 테마관광으로 농촌이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 왔다"고 전했다.

그는 '농민 장'이 아닌 '가족 장'으로 치른 이유를 "유서에 남긴 뜻이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농민 장으로 치르지 않아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본다"는 것. 한편 그는 고 정용품씨가 유서를 적어내려간 풍경사진에 대해 "유채꽃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암석과 바다가 보이는 사진이었다"면서 "당신의 꿈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유서 메시지, 일순간에 묻어져선 안돼"

-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분이 자살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식을 처음 접할 때 어땠나.
"그냥 담담했다. 다른 생각은 들지않았다. 평소에 냉정하게 판단하는 분이었는데…. 무엇인가 자신이 이뤄내고 싶고 그렇게 이뤄내려고 했던 꿈과 현실에 괴리가 있었던 것 같다."

- 농민단체에서는 '농민 장'으로 치를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
"모든 사람들이 유서 내용대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 '농민 장'을 요청받았는데 유서의 순수성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다른 각도로 정치적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했다. 그 뜻에 오해의 소지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족 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가시면서 남긴 깊은 메시지는 한 순간에 묻혀서는 안 된다.

국민들에게, 정부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충분히 받아 들일 수 있는 국민과 농민들이라면 무엇인가 파장을 느낄 것이다. 장례를 치르는 문제를 이슈화하기보다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구성원으로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으면 했다. 유서에서 분명하고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염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평소에도 농촌문제 등에 대해서 형제들에게 자주 이야기를 했나.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 동생들은 모두 농사를 짓고 살지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농촌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분들과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유서에 나와 있듯이 국가 정책이 농민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농민의 노고를 감안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메시지가 아니겠나."

- 유서에 쌀 문제 등 농업과 농촌에 대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정부에 하고 싶고 말이 있다면.
"농민들의 어려움에 대해 밝힌 유서를 정확하게, 한 자 한 자 되새김하면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머리 속에 새겨놓고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 정부는 농업과 농촌문제를 생각할 때 후회없는 결론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메시지를 일순간에 묻어버리지 말고, 유서 내용대로 정책을 세워주기를 바란다."

- 고인은 늦은 나이에 대학을 다녔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광주 한 호텔 조리부에서 한식을 담당했다. 당시에는 5남 2녀 중 장남이기도 하고 집안의 살림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 그 꿈을 더 풍부하게 하고 싶어서 대학이 개설한 전문가 과정을 여러 곳을 수료하기도 했다. 또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면서는 가정학과와 행정학과에서 공부했다. 이후 관광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유서 남긴 풍경사진, 당신의 꿈을 보여 준 것"

13일 새벽 경찰, 유가족과 농민단체 관계자들이 유서 원본을 보며 유서 내용을 확인하고있다.
13일 새벽 경찰, 유가족과 농민단체 관계자들이 유서 원본을 보며 유서 내용을 확인하고있다. ⓒ 한농연
-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나.
"호텔 조리부에서 일하다가 그 호텔이 부도가 났다. 이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다. 농촌에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을 이장으로 있으면서도 환경도 바꾸려고 노력했고 농민들의 요구를 정치권이나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파수꾼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농사뿐 아니라 테마관광으로 농촌과 농민이 살 수 있는 것이 뭐냐를 두고 고민했다."

- 여러 분야를 공부한 것 같다.
"하고 싶었던 꿈이 많았다. 마을 일을 보지 않을 때는 책을 많이 봤다. 집이 있지만 마을회관에서 자주 잠을 잤다. 늦은 나이지만 당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더 배우고 고민했기 때문이다."

- 농사뿐 아니라 사회활동도 많이 했던 것으로 아는데.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총학생회장도 맡았다. 농협 감사, 마을 이장, 한 신문사 객원기자도 했다. 상당히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 유서를 풍경사진 뒷면에 남겼다고 하던데, 어떤 사진인가.
"풍경사진에 굳이 유서를 남긴 것은, 당신의 유서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인 것 같다. 사진을 보니, 제주도 같던데 유채꽃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암석이 놓여있고 멀리에는 바다가 보이는 사진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당신의 꿈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 대문에 왜 태극기가 걸려있나.
"형님은 애국심이 강하다. 항상 대문에 태극기를 걸어뒀다. 집 뒤 뜰에는 무궁화를 많이 심어두었다. 유서를 보면 알겠지만 쌀 문제와 농촌 문제뿐 아니라 투명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분이다."

"참 착한 사람이었는데... 아까운 사람이 죽었다"
[장례식] 고향 주민들이 평하는 고 정용품씨

ⓒ광주드림 김태성

농민들을 위로하고 농업발전을 다짐하기 위해 정부가 정한 '농업인의 날'. 전남 담양군 남면 인암리 이장 정용품(38)씨는 농업의 꿈을 접었다. 정씨가 주검으로 발견된 다음날인 13일 오후 장례식이 치러졌다.

농민단체들의 '농민 장' 제안에 가족들은 "유서에 남긴 뜻이 오해를 살 수 있다"며 '가족 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이날 유가족들은 광주 영락공원에서 화장터로 향하는 그의 관을 보내며 오열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 정OO(74)씨는 "용품아! 용품아! 나도 같이 갈란다"면서 가슴아파했다. 그의 어미니는 "차마 볼수가 없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의 어머니는 "아이고 이놈아!"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아까운 사람이 죽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참 좋은 동생이었다"고 소회를 밝힌 정태호(46)씨는 "95년에 고향에 들어와서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는데…"라며 "농사일도 잘하고 더 배워서 어떻게하면 우리가 살 길을 찾아볼까하고 대학도 다녔는데… 속으로는 앓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1단지 농사를 지어도 이것 저것 빼면 채 100만원도 남지않는다"면서 "이런데 누가 살겠느냐, 젊은 사람들은 다 나가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야하는데"라고 한 숨을 내뱉었다. 그는 "최근에는 주말 농장 운영이나 테마관광을 고민하고 있었다"면서 "활로를 찾고 싶어서 대학도 관광학과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인암리에서 만난 칠순이 넘는 할머니들은 "말도 못하게 착한 사람이었는디"라며 안타까워했다. 문득순(80)씨는 "아이고 참말로 똑똑하고 그렇게 좋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문씨는 "젊기도 젊고 그 사람 이장하면서 좋아 진것도 많지"라며 "진짜 아까운 사람 하나 갔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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