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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라는 프로에서 연인이나 사랑하는 사람간에 주고받은 시를 모집한다는 문구였다. 물론 나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문구이다. 일기 쓰고, 반성문 쓰는 거라면 모를까, 참기름 짜듯 단어를 짜고 또 짜서 만드는 '시'는 나처럼 모든 감정이 입으로 쏟아져나오는 사람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문구였다.
그런데… 그 순간 왜 남편의 이름 석 자가 떠오른 것일까? 총각시절 어느 신문사에 시를 보내서 맥주 한 상자를 상품으로 받았다는 남편은 그 시절에 써놓은 시를 지금도 몇 편 간직하고 있을 만큼 한때는 감성이 수돗물처럼 뚝뚝 흘러내리는 시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인에게서 나 역시 지난 6월 13일인 6주년 결혼기념일에 처음으로 받은 한 편의 시가 있다는 것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를 가져와서는 눈치코치 구단인 내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심오함 그 자체였던 남편의 시를 노니 염불하는 마음으로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솔직히 뭔가를 기대하고 올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뒤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수상작 중에 남편의 시가 포함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최우수상은 아니었지만…. 최종심사에 오른 다섯 편 중에 남편의 시가 포함이 되었다고 하니 가문의 영광을 넘어서 이제껏 "내가 왕년에 또 시인 아니었냐?"며 자칭 시인이던 남편을 '왕' 무시했던 내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상품으로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던 책 중 다섯 권이 부쳐져왔다.
해서 쑥스럽지만 이 자리에서 남편의 고백시를 소개해 볼까 한다.
황량한 벌판에
하이얀 민들레씨앗
하늘에서 내려와
뿌리를 내리고
한 포기 두 포기
조금씩 늘어나
첫 겨울 지나고, 비 한 줌 내리지 않는 가뭄이 와도
그 곳을 지킨 지
어느덧 여덟 해
눈걸음걸음 걸어도 보이는 곳엔
온통 대지엔 노오란 민들레
이 세상 끝나는 곳까지 민들레
이 세상은 민들레 뿐이다…
만난지 여덟 해만에 받은 첫 고백이자 선물이었다. 그런데 선물이랍시고 내민 파란봉투가 처음엔 얼마나 미덥잖고, 마뜩찮던지….
왜 안 그렇겠는가? 파란 봉투 안에 들어있던 것은 상품권도 아니고, 빳빳한 현찰도 아니고 영화 티켓도 아닌 이 시 한편이 전부였으니 얼마나 실망스럽던지…. 처음으로 받은 꽃 선물 앞에서 "국도 못 끓여먹는걸 뭣 땜에 돈을 주고 사왔어요. 다음부턴 돈으로 줘요!!"라고 쏘아붙였던 내가 시 역시 국도 못 끓여먹는 것이어서라기보다는 도통 시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며 더 크게 실망을 했었다.
그런데 그 국도 못 끓여먹는 시 한 편이 귀하디 귀한 책이 되어 돌아왔으니 이젠 만천하에 남편의 시를 자랑해도 되겠지? 혹, 시를 이해하신 분은 풀이를 해줘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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