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임영진 전남대 교수가 '佛'가 새겨진 기와편을 살펴보고 있다.
임영진 전남대 교수가 '佛'가 새겨진 기와편을 살펴보고 있다. ⓒ 최연종
전남 화순군의 남산이 토성(土城)으로 밝혀지면서 정확한 축조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남산 고성지 시굴조사 지도위원회에서 임영진 전남대 교수 등 3명의 지도위원들은 토루의 축조 수법과 출토 유물을 통해 남산은 고려 시대에 쌓은 성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토루 하단에 호석렬이 보여 성의 축조 시기가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성의 축조 시기는 성벽을 절개해 나온 석렬과 성벽 내부에서 나온 기와편이나 토기편 등 유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렬이 한쪽이냐 양쪽이냐에 따라 축조 시기가 다른데 6세기 중반 이후에는 양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축(版築)도 시간이 흐를수록 두께가 두꺼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성 내부 사면 트렌치 전경. 건물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성 내부 사면 트렌치 전경. 건물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 최연종
성벽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된 것도 축조 시기를 추정하는 열쇠다. 성안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나온다고 해서 성 축조 시기를 삼국시대로 볼 수는 없다는 것.

성곽 전문가에 따르면 성벽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늦은 시기가 성 쌓은 시기라고 한다. 성을 쌓으면서 오래된 유물이 휩쓸려 들어가기 때문. 지표에서 수습된 유물은 성의 축조 시기를 판단하는 데는 무리라는 설명이다.

남산 토성은 시굴 조사 결과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전에 있던 토성을 고려 시대 때 개축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를 밝히기 위해서는 추정 건물지에 대한 정밀 발굴 및 학술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3번 트렌치 시굴 광경. 석렬의 내외축을 연결하는 보축이 발견됐다.
3번 트렌치 시굴 광경. 석렬의 내외축을 연결하는 보축이 발견됐다. ⓒ 최연종
한편 성(城)은 크게 축조 재료에 따라 토성(土城)과 석성(石城), 성의 위치에 따라 읍성(邑城)과 산성(山城) 등으로 구분된다. 토성은 다시 판축(版築)과 성토(盛土), 석성(石城)은 한쪽 벽을 돌로 쌓은 편축(片築), 양쪽 모두 쌓은 협축(夾築)으로 분류된다.

남산 토성은 판축 기법으로 쌓았다는 설과 성토 기법으로 쌓았다는 설이 있으나 판축 기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판축(版築) 기법은 성벽의 낮은 부분을 입자가 곱고 잘 들러붙는 점토를 5~10cm 두께로 차곡차곡 다져 올려 성벽을 쌓는 기법이다. 하지만 땅 밑(기저부) 흙을 다진 뒤 2~3단의 돌을 쌓고 다시 흙을 다지는 '성토(盛土)' 기법으로 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