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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륜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찌되었던 바퀴가 두 개 달린 물건은 무시당한다. 바퀴가 모자란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자동차인데도 다닐 수 없는 길이 참 많다. 이륜자동차의 통행 불공평에 대해 알아봤다.
당연시 여겨 왔던 이륜자동차의 고속도로 통행금지. 하지만 이륜자동차도 도로교통법상 엄연한 자동차다. 전 세계적으로 이륜자동차가 고속도로를 통행하지 못하는 나라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왜 대한민국은 이륜자동차만 미워하는가?
중요한 길들은 다 막아 놨다
서울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된 곳은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내부순환도로, 청계고가, 노들길,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자유로, 양재대로 등이다. 사실상 서울의 중추도로에서는 모두 이륜자동차 통행을 통제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하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뱅글뱅글 돌아서 30분 걸려 가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연료소모도 많아지고 막히는 도로를 주행하다보니 위험하기도하다.
그렇다면 정말 이륜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자동차라 함은 '스스로 달리는 차'라는 말을 줄여놓은 것이다. 즉 엔진을 장착해 스스로 움직이는 모든 것은 자동차에 해당한다. 바퀴의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라 함은 철길 또는 가설된 선에 의하지 아니하고 원동기를 사용하여 운전되는 차(견인되는 자동차도 자동차의 일부로 본다)로서 자동차관리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승용자동차·승합자동차·화물자동차·특수자동차·이륜자동차 및 건설기계관리법 제26조 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한 건설기계를 말한다. 다만, 제15호의 규정에 의한 원동기장치자전거(125씨씨 미만)를 제외한다." - 도로교통법 제1장 제2조
원래 법이라는 것이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기 때문에 약간 복잡하더라도 이해하길 바란다. 별 얘기는 아니고 125cc이상 이륜자동차는 자동차라는 얘기다. 도로교통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이륜자동차는 분명한 자동차다. 그런데 왜! 달릴 수 없는 도로가 이다지도 많은 것일까?
도로교통법의 모순
"보행자 또는 자동차(이륜자동차는 긴급자동차에 한한다)외의 차마는 고속도로 또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통행하거나 횡단하여서는 아니 된다." - 도로교통법 제5장 제58조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자동차 정의에는 이륜자동차가 자동차로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자동차전용도로와 고속도로에 들어갈 수 있는 이륜자동차는 긴급자동차에 한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일반도로에서 이륜자동차를 운행하면 자동차고, 자동차전용도로나 고속도로에서 이륜자동차를 운행하면 리어커나 말 취급을 받는 것이다. 얼마나 모순되고 일관성 없는 법조항인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로교통법상 이륜자동차의 자동차전용도로 통행금지는 매우 논리가 약하다. 바퀴가 2개이기 때문에, 덩치가 작기 때문에 고속 주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은 평균키에 미달하는 키 작은 사람은 인권이 없다는 말과 같다.
더욱 큰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1998년 10월말 노창덕씨는 '바이크통행규제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신청했으나 심리조차 하지 않고 각하됐다.
아우토반에는 스쿠터도 주행할 수 있다
AB지 창간 7주년 기념으로 연재한 유럽투어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속도 무제한이라는 독일의 아우토반에서도 이륜자동차는 엄연하게 자동차로 인정받으며 달린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이륜자동차의 통행을 제한하는 곳은 보기 힘들다.
| | | 도로교통법 참고 조항 | | | | <참고>도로교통법 제2조 정의
15. "원동기장치자전거"라 함은 자동차관리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이륜자동차 중 배기량 125씨씨이하의 이륜자동차와 50씨씨 미만의 원동기를 단 차를 말한다.
<참고>도로교통법 제1장 제2조 정의
2. "자동차전용도로"라 함은 자동차만이 다닐 수 있도록 설치된 도로를 말한다.
3. "고속도로"라 함은 자동차의 고속교통에만 사용하기 위하여 지정된 도로를 말한다. | | | | |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이륜자동차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광경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륜자동차 통행을 단지 위험하다는 이유로 제한하지는 않는다. 같은 이륜자동차를 운전하는데 한국 사람이 운전하면 위험하고 외국 사람이 운전하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정부의 무관심과 선입견이 만들어낸 촌극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정부에서 추진해온 세계화는 어디 가고 아직까지 흥선대원군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상 이륜자동차의 통행제한은 분명 모순이다. 과학적 근거와 통계 없이 추측만으로 '이륜자동차가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면 위험할 것이므로 통행을 허용하면 안된다'라고 정해놓은 것이다.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릴 수 있는 이륜자동차는 '긴급자동차에 한한다'라는 법조항을 살펴보자. 긴급자동차라 함은 경찰차, 구급차 등 긴급한 상황을 고려하여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경찰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경찰관은 각종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대배기량 이륜자동차에 대한 운전교육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를 주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일반인들도 그에 합당한 교육을 이수하면 통행을 허용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라도 있는가?
제도 장치를 준비해두지도 않고 일반 사람들의 운행 실력은 믿을 수 없으므로 안전을 위해 통행을 제한한다는 것은 군사독재시절에나 써먹던 관리방법이다.
에너지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가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도심을 통행하는 차량 중 70% 이상이 1인 탑승차량이라고 한다. 보통 소형차(1500cc)의 실제 연비가 리터당 13km라면 이륜자동차(125cc 4스트로크 기준)는 약 3배 정도 되는 36km이다.
굳이 한 달에 얼마가 절약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정부에서 이륜자동차 운행을 권장하여 승용차가 이륜자동차로 전환된다면 다양한 부과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주차문제, 자동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 문제 등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이륜자동차가 고속 주행하다가 사고가 난다면 4륜차 운전자보다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4륜차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학적 근거 없이 단순히 위험하다는 추정만으로 이륜자동차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줘도 무방한가? 어느 도로를 이용할 것인지는 운전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사람들은 성질이 급해서 고속도로통행을 허가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난폭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운전자들이 모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륜자동차가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에서 통행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독선이다. 이륜자동차도 엄연한 자동차고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더 이상 소수 법령을 정하는 사람들의 추측에 따라 이륜자동차가 불익을 당해서는 안된다.
덧붙이는 글 | 2001년 3, 4월에 본인이 작성하여 월간 오토바이크에 기재되었던 돋보기라는 기사를 다시 재편집해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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