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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입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 가을 산행이 있었습니다. 목적지는 창녕 화왕산이었습니다. 화왕산은 억새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등산객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화왕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큰길을 벗어나자 좁은 길이 나왔습니다. 숲이 울창했습니다. 가을단풍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오르막길입니다. 조금만 가면 평평한 길이 나오겠지 했는데도 그게 아닙니다. 계속 가파른 오르막길입니다. 모두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길가에 선 채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사람도 보입니다. 어떤 분은 아예 길가에 퍼질러 앉았습니다. 그만큼 오르기가 힘든 고개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환장고개'라고 불렀답니다. 숨이 환장할 정도로 가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자, 힘내세요. 얼마 안 남았습니다."
"바로 저깁니다."
"10분만 오르면 됩니다."

▲ 화왕산 내려오는 길입니다. 제 뒤에는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 박희우
내려오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별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말만 믿다가 실망해서 힘에 부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그 때마다 마음속으로 정해버립니다. 그 두 배는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드디어 '환장고개' 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저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습니다. 널따란 분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병풍처럼 산이 분지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바람결에 억새가 출렁이고 있습니다. 마치 분지에 호밀을 심어놓은 것 같습니다. '십리억새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가히 '억새평원'으로 불릴만했습니다.

11월이라서 그런지 억새는 하얗게 새었습니다. 마치 분지 전체가 하얀 솜이불을 두른 것 같습니다. 억새풀이 어른 키보다도 컸습니다. 화왕산 억새풀은 시기마다 색깔이 변한다고 합니다. 10월 초는 보랏빛, 10월 중순은 황금빛, 10월 하순은 은빛으로 변합니다. 그러다가 11월 초부터는 하얗게 바랜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이 가히 장관입니다. 모두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멀리 곽재우 장군이 쌓았다는 산성이 보입니다. 우물터도 보입니다. 우리 직원들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음료수도 마시고 과일도 나눠먹습니다. 오늘 산행에는 한 명도 빠진 분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모두 기분 좋은 표정들입니다.

다시 직원들이 배낭을 둘러맵니다. 화왕산 정상까지는 조금 더 올라가야합니다. 이제는 힘이 들지 않습니다. 완만한 경사입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산들은 모두 고만고만합니다. 그걸 보고 직원 중 한 분이 "그래프가 완만하다"고 합니다. 산 능선을 그래프에 비교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내려올 때는 '관룡사' 쪽을 택했습니다. '관룡사'까지는 제법 멀었습니다. 그래도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점심도 배불리 먹었습니다. 더욱이 내려가는 길입니다. '관룡사' 맞은편에 '용선대'가 보입니다. 그 위에 큰 불상이 놓여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때 만든 불상입니다.

직원 중 몇 분이 불상 앞에서 절을 합니다. 소장님 모습이 보입니다. 두 손을 모았습니다. 소장님 자제분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아마도 수능시험 잘 쳐달라고 비는 모양입니다. 박 주임도 절을 합니다. 저는 박 주임의 속내를 알 것 같습니다. 내년 승진시험에는 꼭 합격해달라고 빌고 있을 겁니다. 저도 "부처님, 눈먼 우리 어머니,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하고 빌었습니다. 아주 간절하게 말이지요.

이제 '관룡사'입니다. '관룡사'에 그윽한 정취가 흐릅니다. 절 처마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메주는 스님들의 훌륭한 영양식입니다. 감나무에는 홍시가 몇 개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까치밥 주려고 남겨놓은 모양입니다. 밭에서는 스님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을 대비해 농작물에 비닐을 씌우고 있습니다.

▲ 스님 두 분이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 박희우
우리는 '관룡사'를 내려왔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차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가게 앞 둥근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파전과 동동주를 주문했습니다. 으슥한 가을입니다. 동동주가 한 두 잔 돌고 노랫가락이 흘러나옵니다. 딱, 딱,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잊혀진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을 맵니다."

고복수님이 부른 '짝사랑'이란 노래입니다. 언제 들어도 애잔한 노래입니다. 저는 유년시절부터 이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그때 저는 '으악새'가 새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나이가 들고서야 '으악새'가 '억새'라는 걸 알았습니다.

억새가 넘실대는 화왕산, 그 끝자락에서 우리는 '짝사랑'을 불렀습니다. 직원들과의 따뜻한 애정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화왕산의 저녁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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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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